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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일 월요일

와틀링과 레이놀즈가 평가하는 러시아의 군사적 목표와 역량

지난 2월 중순 RUSI 홈페이지에 올라온 잭 와틀링(Jack Watling)과 닉 레이놀즈(Nick Reynolds)의 칼럼을 번역해 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역량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니 "이거다!" 싶은 설이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만 와틀링과 레이놀즈의 분석은 진지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 글의 결론도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원조를 해 주어야 한다는 '매우 뻔한' 이야기 입니다.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이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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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2024년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추구할 목표, 그리고 러시아의 역량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를 막아내려면 기본적으로 러시아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러시아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전쟁이 진행 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승리 공식에 관해 여러가지 설이 나왔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 수뇌부는 승리를 어떻게 해서 달성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러시아의 의도와 역량을 설명하려고 하며, 러시아가 성공할 가능성에 대해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들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킨다는 전략적 목표를 고수하고 있다. 이제 러시아는 승리를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최근 러시아 협상단이 제시한 항복 조건을 보면 우크라이나는 지금 러시아군이 점령한 영토를 할양하고 여기에 더해 하르키우, 또는 오데사까지 할양하라는 내용이 있다. 또 나토에 가입해서는 안되며, 우크라이나 정부 수반은 러시아가 동의한 인물을 앉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가 양보했다는 내용은 고작 우크라이나의 남은 지역이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 뿐이다.

 러시아가 이런 결과를 달성하려는 과정은 세 단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첫 번째 단계는 우크라이나의 전 전선에 걸쳐 압박을 계속해 우크라이나군의 탄약과 예비 병력을 고갈시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러시아의 정보 기관들은 우크라이나의 협력국들이 군사 원조를 지속하려는 의지를 꺾는 임무를 수행한다. 군사원조가 심각하게 줄어들어서 우크라이나의 탄약 재고가 고갈된다면, 러시아는 전장에서 큰 성과를 얻기 위해 대규모 공세 작전을 (설사 느리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개시할 의도이다. 공세 작전에서 성과를 거두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가 내건 항복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 러시아군의 병력 보충과 산업 역량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간 계획은 2026년까지 승리를 달성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성공을 거둘 경우 러시아의 목표가 확대되고,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및 나토와 체결한 모든 중요한 합의사항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러시아가 협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해도 그 다음에 우크라이나의 나머지 영토를 물리적으로 점령하거나 과감하게 또 다른 지역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러시아의 군사적 역량

 2023년 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군은 조직력이 심각하게 와해되어 있었고 규모는 360,000명 가량이었다. 2023년 6월 우크라이나군이 공세를 개시했을때 러시아군은 410,000명 가량으로 증강됐고 조직력도 훨씬 강화됐다. 2023년 여름 기간 중 러시아군은 국경 지대와 점령 지역에 여러개의 훈련 연대를 창설했다. 그리고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킨 뒤에는 군을 통일화 하려 하면서 용병에 의존하던 경향에서 탈피했다. 2024년 초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에 배치된 러시아군 작전집단의 규모는 470,000명 규모이다.

 러시아군은 대대급 이상의 제대를 전통적인 소련식 편제로 되돌려 연대, 사단, 제병협동군 순으로 재편했다. 하지만 연대급 이하는 크게 다르다. 대대는 전선대대(Line Battalions)와 돌격대대(Storm Battalions)로 구성되어 소규모로 분산해서 싸우는 중대 집단으로 작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전장의 환경에 적응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규모 부대를 조율할 수 있는 훈련된 장교가 부족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 러시아군 초급장교의 상당수는 사병에서 진급해 축약된 간부 훈련 과정을 이수하고 임관하고 있다. 심한 경우에는 2개월간의 교육만 받고 임관한다.

 러시아군은 꾸준히 많은 손실을 입고 있지만 병력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군은 작전을 대규모로 전개하면서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 러시아군 부대는 편제의 30% 수준의 손실을 입으면 전투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아 최전선에서 빠져 재편성에 들어간다. 러시아군은 현재 대규모 공세를 하는 대신 영토를 점령하고 고수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군에게 작은 피해를 꾸준히 입히는 소규모 공격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런 방법으로 여러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아직 목표로 한 150만명의 병력을 확보하지는 못 했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군 모병관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싸울 계약병의 85%를 모집했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는 2025년 까지도 현재 수준의 소모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러시아군의 전투 장비를 보면 약 4,780문의 야포(이중 20%가 자주포), 1,130문의 다연장로켓포, 2,060대의 전차, 그리고 7,080대의 기타 장갑차량(주로 MT-LB, BMP, BTR)이 있다. 약 290대의 헬리콥터(이 중 110대가 공격헬리콥터)와 310대의 제트기가 이를 지원한다. 이런 무기체계들은 탄약이 부족해서 운용에 제약을 받고 있다. 특히 220mm 다연장로켓체계와 들쑥날쑥한 152mm 탄약 보급이 큰 문제다.  고속 제트기와 같은 일부 무기체계는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숙련된 조종사가 많지 않아서 제약이 있다. 러시아 공군의 조종사 손실은 Il-20과 A-50U의 장비 운용요원까지 포함하면 159명인데, 러시아 항공우주군 비행부대의 들쑥날쑥한 비행시간을 고려하면 심각한 역량 손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항공우주군은 꾸준히 상당한 규모의 소티를 하면서 항공기 탑재 무기를 발사하고 있다. 종합하자면, 우크라이나군이 꾸준히 상당한 수준의 소모를 강요하는한 러시아군의 질적 수준은 향상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러시아군은 2024년 내내 지속적으로 공격 템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산업 역량

 현재 진행중인 작전을 지원할 러시아의 산업 역량을 보자. 러시아는 방위 산업을 상당한 수준으로 동원했다. 기존에 있던 시설의 작업 교대를 늘리고 생산 라인을 확대해 나가고 있으며, 가동을 중단했던 시설도 다시 가동을 시켰다. 이렇게 해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예를들면, 러시아는 연간 1,5000대의 전차와 3,000여대의 다양한 기갑차량을 군대에 공급했다. 미사일 생산도 유사하게 늘어났다. 2023년 초 러시아는 9M723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한달에 6발 생산했고 재고량은 50발 수준이었다. 2024년 초가 되자 러시아는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매달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스칸데르 미사일 사용량은 2023년 여름 이래 꾸준히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9M723 탄도미사일과 9M727 순항미사일을 합치면 재고량도 200발로 늘어났다. Kh-101과 같은 핵심적인 미사일의 재고량도 유사하게 늘어난 것이 관측되었다.

 이런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산업 생산력은 지속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심각한 한계에 봉착했다. 예를들어 전차와 기갑차량은 80%가 신규상산이 아니라 기존 재고를 재생해 현대화한 것이다. 현재 비축되어 있는 장비의 숫자를 고려하면 러시아는 2024년 동안에는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2025년이 되면 상태가 더 좋지 않은 장비까지 재생해야 할 것이며 2026년 즈음이 되면 비축된 장비를 거의 소모할 것이다. 재생 차량이 줄어들면서 신규 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여유 설비는 생기겠지만 러시아군에 공급할 수 있는 장비의 숫자는 심각하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미사일과 같은 러시아군의 복잡한 무기체계는 또 다른 약점이 있다. 이런 무기들은 서방에서 생산한 부품에 의존한다. 러시아는 일관성이 없고 느슨한 서방의 제재를 파고들어 필수적인 부품들을 지속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 군수 산업을 겨냥한 일관성 있는 제재는 공급망을 무너트릴 수 있다. 현재의 결함 투성이 제재만으로도 러시아 군수 산업이 치르는 부품 비용은 30%나 증가했다. 그리고 러시아 군수산업은 대체할 부품을 획득하기 위해 투자를 했음에도 부품 공급을 늘리지 못하고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다.

 하지만 러시아의 가장 심각한 한계는 탄약 생산인 듯 하다. 러시아 국방부는 2025년에 더 많은 영토를 점령하려는 열망을 현실화 하기 위해 2024년에 400만발의 152mm 포탄과 160만발의 122mm 포탄을 러시아에서 생산하거나 다른 곳에서 획득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군수산업계는 2023년에 100만발이었던 152mm 포탄 생산량을 2024년에는 130만발 까지 늘릴 수 있으나 122mm 포탄 생산량은 800,000발에 불과할 것이라고 러시아 국방부에 보고했다. 뿐만아니라 러시아 국방부는 5년 이상의 리드타임을 고려해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고 원자재 조달에 추가 투자를 하지 않는 이상 향 생산량이 크게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단기적으로 러시아가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 상태가 좋지않은 300만발의 비축 탄약을 끌어 써야만 러시아군의 적절한 보급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탄약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벨라루스, 이란, 북한, 시리아 등과 공급 및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시리아는 완제품 상태의 포탄이 아니라 포탄 껍질만 공급할 수 있을 듯 하다. 북한에서 조달한 약 200만발의 122mm 포탄이 2024년도에는 러시아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2025년에 예상되는 152mm 포탄의 심각한 부족을 벌충할 수는 없다. 러시아의 전체적인 포병 탄약 생산량은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다연장 포탄을 포함해 연간 300만발 정도에서 정체될 듯 하다.


 결 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국가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한다면 러시아의 승리 공식은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협력국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충분한 탄약과 훈련 지원을 계속해 준다면 2024년에 있을 러시아의 공격을 둔화시킬 수 있을것이며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2025년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가 공세에 필요한 군대의 질적 향상을 이룩하지 못해 2025년에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전망을 한다면 2026년에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2026년 이후에는 소모로 인해 러시아군의 전투력이 물질적인 면에서 악화되고 러시아의 산업도 충분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전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빠질 것이다. 러시아의 산업에 타격을 주려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국가들이 러시아의 군수산업 동원 역량을 목표로 하는 조치들을 시행하는데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2025년까지 우크라이나가 저항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러시아의 승리 공식이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러시아군의 규모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해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질적으로 압도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동원 체계를 구축할 시간과 훈련 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러시아의 입지를 꾸준히 위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러시아가 협상을 모색하고,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종전 조건을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건 중요하다. 러시아가 추구하는 전쟁의 방향에 따라갈 때가 아니다.


2023년 4월 2일 일요일

우크라이나군의 소모에 대해 우려하는 분석

 Global Politics and Strategy 65-2에 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여름~가을 전역을 분석한 IISS의 가디(Franz-Stefan Gady)Center for Naval Analyses의 코프만(Michael Kofman)이 공동으로 집필한 글이 실렸습니다.

 

Ukraine’s Strategy of Attrition

 

가디와 코프만은 전쟁 발발 이래 우크라이나는 소모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군에 대해 결정적인 타격은 입히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가 큰 성공을 거둔 하르키우와 헤르손 지구 반격에 대해서도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현 상태로는 장기적인 소모전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예측을 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상당히 부담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방식을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은 전술 단위에서 전쟁을 수행하는데 주로 소모전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기동전에서 작전적 성과를 거두려면 먼저 광범위한 소모가 있어야 한다. 이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재래식 전쟁은 소모, 기동, 재편성의 양상을 띄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원한 하이마스와 같은 서방의 첨단 무기와 정보-감시-정찰 자산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은 지속되는 소모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정보 지원을 해 준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하이마스를 사용해 장거리 정밀 타격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이마스가 지원되기 전에는) 우크라이나군은 이런 장거리 타격 능력이 없었다. 하미마스는 러시아군의 포병 전력 우위를 감소시켜서 우크라이나군이 공세 작전을 감행하는데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우크라이나군은 기동전 이론에 입각해 러시아군의 지휘통제망과 보급소와 같은 핵심적인 지원 체계를 타격해 러시아군의 물리적, 심리적 응집력과 사기를 깎아 내리려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동과 정밀 타격 보다는 소모와 대규모 화력 투사를 해야 이를 달성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 포병은 종종 단독으로 작전을 했으며, 우크라이나군이 병력 밀집도가 높은 준비된 방어선에 공세작전을 전개했을 때의 결과는 복합적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공세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전통적인 화력 투사와 반복적인 지상 공격을 결합했다. 러시아군의 지휘통제 체제와 탄약 보급 체계, 교통선에 대한 장거리 정밀타격은 우크라이나군의 기동전 수행 능력을 크게 향상시키지 못한 걸로 파악된다. 장기간의 소모전을 통해 기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기동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병력과 물자, 탄약 보급을 대폭 확충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군이 단기간에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군의 하르키우와 헤르손 공세는 우크라이나군의 강점 뿐만 아니라 한계점도 보여주었다.

Franz-Stefan Gady and Michael Kofman, “Ukraine’s Strategy of Attrition”, Global Politics and Strategy 65-2(2032), p.8

 

하르키우 반격 작전에 대해서는 미국이 제공한 정밀 타격 무기의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으며 러시아군이 초기 패배의 충격에서 상당히 신속하게 회복했다고 평가합니다.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 공세작전에 최소 6개 여단을 투입했고 여기에는 제92기계화여단과 제3전차여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이 지원한 16대의 하이마스로 서방의 정보 지원을 받아 3개월에 걸쳐 정밀 타격을 실시했으며 러시아군 전선 후방의 탄약 집적소, 지휘소, 군수보급 허브, 철도 교차점, 교량 등 400여개의 목표를 타격하면서 공세를 준비했다.

많은 분석가들이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 반격에서 성공을 거둔 핵심 요소가 하이마스라고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다른 전선으로 병력을 이동시킨 점을 감안하면 하이마스로 하르키우주의 러시아군 보급 체계를 타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할 만한 근거가 희박하다. 비록 최소한 러시아군의 지휘소 세곳이 하이마스 타격에 당하기는 했으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하르키우 방면에 하이마스가 배치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던 걸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군수보급 허브를 재배치하고 지휘소를 강화하고 기만책을 강화하여 하이마스 포격의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킨 걸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예비대 운용을 늦추고 방해하거나, 다른 곳으로 예비대를 돌리도록 하거나 보급선을 차단하는 결정적인 종심전투를 수행하지 못한 걸로 판단된다. 러시아군의 주요 문제는 후방 지역이 타격 받는게 아니라 보병 부족, 예비대 부족, 소모된 부대를 순환시킬 능력 부족 등 최전방의 병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데 있었다. 소모와 우크라이나군의 기만 때문에 러시아군이 하르키우 방면 증원과 헤르손 방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를 받은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포병 소요는 한달에 90,000발 정도였다. 여름 기간 내내 이 정도 규모가 유지되었다. 즉 야전포병의 화력에 대한 의존이 매우 컸음을 보여준다. 겨울 기간 중 러시아군의 포병 사격이 크게 감소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인은 전투의 강도가 약해지고 방어해야 할 전선이 단축되면서 포병 사격 소요가 감소한데 있을 수도 있다. 하이마스로 인해서 러시아군이 탄약 집적소를 하이마스 사거리 밖으로 이동시키고 보급 체계를 재조직 하도록 강요당한 결과 러시아의 군수지원 효율이 감소하고 포병 사격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하이마스가 실전에 투입된 직후인 여름 전역 기간의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러시아군이 포병 탄약 사용에 제약을 겪은 더 중요한 요인은 가용한 탄약의 재고와 탄약 생산 능력으로 보인다. 지금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수 있다.

수개월에 걸쳐 격렬한 포병 대결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소모의 핵심적인 요소는 양측 모두 막대한 사상자를 감당하면서 반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돈바스에서 전개된 여름 전역에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소모되었으며 그 결과 러시아군은 하르키우주에서 병력을 빼서 다른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재배치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우크라이나군은 이지움 방면에 국한된 공세를 개시하기 전 6개월에 걸친 소모로 인한 이점과 넓은 전선에 배치된 러시아군의 구조적 결핍에 따른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군의 하르키우 작전은 정밀 유도 탄약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속적인 소모 등의 요인으로 러시아군이 방어하는 면적에 비해 적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이 기동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러시아군은 7월부터 8월에 걸쳐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 방면에 집결하는걸 관측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부군집단 예하의 우크라이나에 배치한 가장 강력한 지상군 부대들을 남부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결정을 내렸다. 바흐무트 방면에서 싸우던 부대와 중부군집단 소속의 부대들은 증원군을 차출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하르키우 방면에는 심각하게 소모되어 응집력이 결여된, 효과적으로 방어를 할 수 없는 부대들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르키우 공세 초기 단계에서는 러시아군의 지휘 통제 체계가 와해되는 징후가 있었다. 러시아군 수백명이 생포되고 수많은 장비가 노획당했다. 하지만 러시아군 지휘부가 총체적으로 마비되고 와해되지는 않았다. 초반에 패배를 당하자 서부군집단 사령관은 중부군집단 사령관을 지냈던 인물로 교체됐다. 새로운 서부군집단 사령관은 러시아군에 대한 확고한 통제를 회복하는 임무를 맡았다. 새로운 사령관은 처음에는 오스킬 강을 따라, 다음에는 크라스나 강을 따라 새로운 임시 방어선을 구축했으며 러시아군은 여러 차례 지연전을 수행했다. 러시아군이 오스킬 강을 건너 감행한 역습은 실패했다. 하지만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고 조율된 역습을 감행할 수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하르키우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지휘 통제 체계가 전면적으로 붕괴되었다고 볼 수 는 없다.

Gady and Kofman, ibid., pp.10~12.

 

헤르손 공세에 대한 평가는 조금 더 부정적입니다. 일단 우크라이나군이 장기간의 소모전을 전개한 결과 큰 피해를 입은 반면 러시아군 주력을 섬멸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합니다. 이 지적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하르키우 전선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군의 헤르손 공세도 준비단계에서 소모전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하르키우와 달리 헤르손 전선의 소모전은 매우 어렵게 진행됐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전선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러시아군은 드니프로 강 때문에 보급지원에 어려움이 있었다. 드니프로강 우안은 크름 반도에서 시작되는 러시아군의 보급선과 두개의 자동차 도로와 두개의 철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헤르손의 러시아군은 인훌레츠 강 때문에 분단되어 있었다. 즉 공세가 시작되면 헤르손 전선은 더 고립될 수 있었다. 수개월간 하이마스로 타격을 당해 러시아군의 보급로는 카호우카 댐을 지나는 교량 한 개와 선박 운행으로 제한되었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방면에 상당한 숫자의 여단을 집중했으며 야포와 하이마스, 드론과 고정익 항공기로 지원했다. 러시아군은 역습을 가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우크라이나군은 주도권을 쥐고 공세를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르키우 전선과 달리 헤르손 방면은 러시아군의 병력 밀집도가 높았고 여기에는 남부군 집단 및 동부군 집단, 정예 부대인 공수군 등의 정규군 부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집된 예비역과 새로 동원된 병력이 증원되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군은 여러 겹의 러시아군 방어선에 직면했다. 양측은 야포와 로켓포, 공격용 드론을 이용해 힘겨운 소모전을 전개할 수 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북부, 중부, 남부 등 3개 축선에서 진격하려 했다. 세 방향에서 진격해 드니프로강 우안에 배치된 러시아군을 교란하고 여러 방면에서 포위하여 궁극적으로는 소모된 러시아군이 강을 건너 퇴각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였다.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 전선과 유사하게 2022년 봄 이래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국지적인 공격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전선의 상황은 유동적이었고 많은 마을이 여러 차례에 걸쳐 주인이 바뀌었다. 우크라이나군은 공세를 개시하기 전 두 달에 걸쳐 포병, 그리고 보다 중요한 하이마스 체계를 이용해 러시아군의 보급 중심지와 교량, 중요한 기간시설을 타격했다. 8월 말 개시된 최초의 공세는 금방 돈좌되었고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휘관을 교체한 뒤 10월 초 공새를 재개해 드니프로 강을 따라 진출하여 돌출부를 형성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인 이 돌파구가 확대되는걸 막으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차단 작전과 장거리 정밀 타격에도 불구하고 방어 포격을 지속할 수 있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러시아군 지휘관은 방어 전략으로 전환하고 병력을 보존하려고 했다. 이렇게 되자 우크라이나군은 유리하게 소모전을 전개하면서 러시아군이 어쩔 수 없이 철수하도록 강요했다. 러시아군은 수주간에 걸쳐 질서정연하게 철수했으며 운용 가능한 장비들도 함께 가져갔다. 서방의 분석가들은 장거리 정밀 타격으로 러시아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을 거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장거리 정밀타격으로는 헤르손에 배치된 30,000~40,000명 규모의 러시아군이 철수하는걸 방해할 수 없었으며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붕괴시키지도 못했다. 러시아군은 상대적으로 큰 손실 없이 철수했다.

Gady and Kofman, ibid., pp.12~13.

 

2023년 하계 전역을 앞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어느 정도 공격 능력을 회복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2022년 추계 전역에서 상당한 작전적 성공을 거두긴 했으나 피해도 무시못할 수준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지난 겨울 기간에 우크라이나는 추가로 전투력을 확보하고 러시아군의 국지적인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크레민나 외곽에서 점진적으로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202211월부터 20232월에 걸쳐 러시아군에게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전선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해야 했으며, 기후도 악화되었고 러시아군이 바흐무트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전쟁 지속 능력을 파괴하기 위해 기간 시설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원을 돌려야 했다. 중포병과 방공포병 탄약과 같은 물자 부족도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노력을 저해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2023년 내내 지속될 걸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는 탄약을 대량으로 소모하고 있는데 탄약 공급과 생산 능력은 안정적이지 못하다. 우크라이나군은 하루에 2,000발에서 4,000발 가량의 포병 탄약을 소모하고 있는데 이것은 외국의 생산능력과 서방 국가들의 비축량을 웃도는 수준이다. 또한 전차포와 야포의 포신과 같은 각종 무기체계가 많은 사격량으로 인해 소모되면서 갈수록 문제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으로부터 원조받은 350문의 야포 중 3분의 1 가량이 운용 불가 상태에 있다. 서방 국가들이 생산량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중기적으로는 부족한 수량을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미국의 비축분에서 충당해야 한다.

총동원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의 인력은 전반적으로 충분한 편이며 대규모의 예비 전력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훈련을 잘 받고 숙련된 인력이 사망하고 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군의 최정예 부대는 소묘율이 높아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지역방위군은 제외하고, 동원편성한 예비 부대를 포함해 대략 40개의 기동여단을 보유했다고 추정된다. 미국에서 추산한 사상자 규모와 지금까지 알려진 우크라이나군의 장비 손실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군의 기동 여단 중 상당한 숫자가 소진되어 전쟁 중에 재편성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우크라이나군 사령관 잘루즈니 장군과 또 다른 우크라이나 장군은 지난 9월 이런 글을 썼다. “전략적 상황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심할 바 없이 2023년 전반에 걸쳐 연속적인 반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반격을 쉬지 않고 감행한다면 더 이상적일 것이다.” 잘루즈니 장군은 우크라이나군의 의도와 구상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대규모의 공세작전을 수행하려면 1개 혹은 그 이상의 작전(작전-전략적) 집단이 필요하며 작전집단은 각각 10개에서 20개 사이의 제병협동여단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모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모두에 현저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어느 한 쪽도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한 대규모의 제병협동 기동전을 감행할 수 없어 보인다. 핵심적인 문제는 우크라이나군이 얼마나 빨리 공세에 필요한 잠재력을 회복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군에 대한 지속적인 지상 공세를 시작할 수 있느냐이다. 현재 편성된 기동여단들의 전투 효율성을 회복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는 지표 중 하나는 지난 수개월간 양측의 주요 전술 단위는 대대나 여단이 아니라 중대 규모였다는 점이다. 한 서방 분석가는 러시아측의 자료에 근거해 20226월 기준으로 우크라이나군의 중대전술집단은 20~25대의 궤도식 보병전투차량과 10~12대의 전차, 6~12문의 자주포, 최대 6대의 다연장 로켓포, 250~450명의 병력으로 편제된다고 추정했다. 사상자 추정치와 장비 손실 추정치를 감안했을 때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중대전술집단의 규모는 더 작아졌을 걸로 보인다.

Gady and Kofman, ibid., pp.14~15.

 

결론 부분에서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 많은 원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크라이나가 봄 기간 중 여러가지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한편으로는 또다른 대공세를 위해 부대를 증편하면서 동시에 러시아군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려 한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수행 전략을 분석해 보면 세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1,000km에 달하는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더 많이 소모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선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압박을 가해 러시아군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군이 충분히 약화되면 기동전 방식의 공세 작전(제병협동 작전으로 수행하는게 이상적이다.)을 시작하는 것이다.

서방의 원조로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크게 개선됐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추가로 작전적 수준의 돌파를 달성하거나 전략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화력 우세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인지는 확실치 않다. 전황 분석이 축적될수록 장기간의 대치상태가 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 국방부와 다른 동맹국의 국방부는 제병협동훈련 과정을 더 확대하고 더 다양하고 많은 정밀유도무기를 지원해야 한다. 제병협동작전 능력이 크게 향상된다면 우크라이나군은 보병전투차량과 전차, 자주포와 방공무기체계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효과적으로 통합 운용하여 전장에서 질적 우세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제병협동 훈련과 정밀 타격능력을 질과 양적으로 더 강화한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군이 소모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Gady and Kofman, ibid., pp.17~18.

 

저는 개인적으로 작년 우크라이나군의 성과를 매우 높게 평가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매우 암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글 또한 많은 분석 중 하나일 뿐이고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실태가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올해 상반기 중에 공세 작전이 시작될 수 있을지, 그리고 공세작전이 시작된다면 어떻게 진행 될 지 지켜봐야 겠지요.

2023년 3월 12일 일요일

아프가니스탄군 붕괴 원인을 고찰하는 SIGAR의 보고서

 

지난 2월에 아프가니스탄 재건 특별감찰관실(SIGAR, Special Inspector General for Afghanistan Reconstruction)에서 20219월 아프가니스탄 군경의 급속한 붕괴 원인을 고찰한 보고서 아프가니스탄 군경의 붕괴 원인은 무엇인가?(Why the Afghan Security Forces collapsed)”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를 읽어보니 주목할 만한 분석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보고서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미국의 개입 중단이 직접적으로 끼친 영향입니다. 미국의 원조 중단으로 인해 발생한 가장 큰 문제는 아프가니스탄 군과 경찰의 군수지원입니다. 이 보고서는 아프가니스탄 군경이 미국에 의존하면서 발생한 문제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20여년간 미국 고문관들은 아프가니스탄 군경을 미군의 거울쌍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식으로 작전을 하도록 교육했다. 미국이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미국방부 계약자들을 철수하는 합의를 했을 때 아프가니스탄 군경은 아직 미국에 대한 만성적인 의존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아프가니스탄 군경은 국가차원에서 자원관리(resource management), 정비(maintenance), 리더쉽 등을 미군에 의존했다. 아프가니스탄 군경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었던 아프가니스탄 공군과 특수부대 조차 미국의 전투 지원부대에 의존했다. 아프가니스탄 공군과 특수부대가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방어하기 위해 분산되면서, 이들에게 보급과 지원을 의존하던 아프가니스탄의 일반 군부대와 경찰은 갈수록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20년이 넘도록 아프가니스탄 군대의 구조와 작전 모델을 미군의 거울쌍으로 만들려 했다. 이렇게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군은 기갑차량과 포병의 비중을 축소하고 세계 곳곳에서 단기간 동안 유연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보다 가벼운 편제로 변화했다. 미군의 신속하고 유용한 자산들은 그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복잡한 보급 및 물류 체계에 의존했다. 아프가니스탄 안보 문제 전문가인 존 슈로든(Jon Schroden)SIGAR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 자체적인 인적 자원과 능력에 의존하거나 과거에 해왔던 방식을 따르는 대신 미국이 하는 것 처럼 행동하도록 하는 걸 선호했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는 미국이 탈레반과 협정을 체결했을 무렵 아프가니스탄 군경은 미국이 기대한 정교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미국 국방부는 교전이 다소 완화된다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 군경이 2024년이 까지 독자적으로 작전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될 것으로 판단했다. 아프가니스탄 군경의 미국에 대한 의존성은 사소한 문제가 이나라 양국간 군사 관계의 특징이었다.”

Special Inspector General for Afghanistan Reconstruction, Why the Afghan Security Forces collapsed, (2023. 2.), p.14.

 

아프가니스탄 공군과 특수부대의 미국 의존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지적합니다.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 공군과 그 예하의 특수임무항공단이 민간기업 없이는 항공기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202012월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 공군 및 특수임무항공단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공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민간 계약업자들을 통해 물류지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비교는 잘못되었다. 미국이 계약한 민간기업들은 자국 회사였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있어서는 외국 회사였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아프가니스탄군의 자체 인력은 아프가니스탄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 중 최대 40% 정도의 정비만 담당했다.

그리고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때 까지도 아프가니스탄 공군의 조직 개편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조직 관리를 하는데 부담이 가중됐다. 예를들어 아프가니스탄군 인력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을 당시 아프가니스탄 공군의 중핵이었던 소련제 Mi-17 헬리콥터에 익숙한 상태였다. 아프가니스탄군 인력은 Mi-17의 정비는 거의 다 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항공 훈련-자문-지원사령부(TAAC-Air, Train, Advise, Assist Command Air)2019년까지 아프가니스탄 공군이 Mi-17 헬리콥터 정비를 완전히 숙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 공군의 헬리콥터를 Mi-17에서 보다 복잡한 미국제 UH-60 블랙호크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TAAC-AirSIGAR에 미국이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에 항의하고 러시아제 예비부품 조달이 어려워지는 등 지정학적 문제가 있어 기종변환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TAAC-Air에 따르면 Mi-17UH-60으로 교체하면서 아프가니스탄 공군이 자체적으로 유지정비 능력을 갖출수 있는 시기가 최소 2030년 이후로 늦춰졌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군을 지원하는 미군과 계약회사들을 모두 철수 시키고 10년이나 지나야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 특수임무비행단의 Mi-172023년까지 CH-47 치누크로 교체하고자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국방부는 202012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아프가니스탄 공군은 중장기적으로 전투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민간 기업의 물류 지원 및 훈련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3월 레절루트 서포트(Resolute Support) 작전 책임자인 밀러 장군은 미군이 철군하면 아프가니스탄 군경에 필수적인 항공 지원 및 정비 지원도 끊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군 장군이었던 사미 사다트(Sami Sadat)와 하이바툴라 알리자이(Haibatullah Alizai)SIGAR에 미국 민간기업이 철수한 직후 아프가니스탄군의 UH-60 헬리콥터 대부분이 지상 주기 상태가 됐다고 진술했다. 사다트는 미국 계약업자들이 철수하자 전투에서 손상을 입었거나 기타 정비가 필요한 기체들이 모두 방치됐다고 말했다. 그는 몇 달 되지도 않아 블랙호크 헬리콥터의 60%가 지상주기 상태가 됐으며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미국 정부는 이것들을 다시 정비할 계획도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 공군의 항공지원과 민간기업의 물류 지원이 감소하면서 아프가니스탄 공군과 특수임무항공단의 작전 능력은 감소했다. 또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시간을 맞춰 보충 체계를 발전시키지도 못했다. 이렇게 해서 고립된 지역에 배치된 아프가니스탄군은 탄약이 떨어지거나 의료후송능력이 없어 죽어갔다. 미군이 철수한 직후 항공기들을 운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다른 아프가니스탄 군경 부대가 탈레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역량이 저해되었다.”

Ibid., pp.15~16.

 

아프가니스탄군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었다는 특수부대에 대한 평가도 비슷합니다.

 

아프가니스탄 특수부대, 특히 아프가니스탄군 특수전사령부(ANASOC) 예하 코만도부대는 일반 아프가니스탄군이나 경찰 부대 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받았다. 또한 일반 아프가니스탄 군경 부대 보다 미국 고문관들과 밀접하게 협력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특수부대의 역량 또한 미국 고문관들과의 관계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예를들면, 아프가니스탄군 특수전사령부는 미군이 제공하는 정비, 보급, 물류, 탄약과 같은 물질적 지원 뿐만 아니라 미국 고문관들이 통합기획절차에 의해 제공하는 지휘 및 리더쉽, 미국 고문관들이 코만도부대의 전투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원하는 작전준비태세 사이클 유지, 미국이 제공하는 정보-감시-정찰 능력 및 공지합동작전 능력에 의존했다.

(미국과 탈레반의) 도하 협정 이전에 아프가니스탄군 코만도는 미국 고위 장교들로 부터 훈련-자문-지원을 충실하게 지원받았다. 하지만 도하 협정 이후 아프가니스탄 특수부대에 대한 미군의 항공지원 및 협동작전은 완전히 중단됐다. 가장 먼저 아프가니스탄군 특수전사령부가 이 문제에 직면했다. 20207월 까지 아프가니스탄군 특수전사령부는 대부분의 임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하게 됐다. 하지만 이조차도 미국의 물자 보급 및 일부 물류 지원에 의존해야 했다.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코만도 부대는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기간 중 아프가니스탄 특수부대의 총 작전 회수는 미국의 지원을 받던 1년전의 절반 수준으로 격감했다. 즉 아프가니스탄 코만도는 2019년에 수행했던 만큼 독립작전을 수행했지만 미군이 함께하는 합동 임무는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었다. 또 아프가니스탄군이 주도하는 작전에 미군이 정보, 물류, 근접항공지원 등의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행했던 작전 중 아프가니스탄 코만도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작전은 많지 않았다. 미국이 합동기획과정에서 점차 빠지게 되면서 미국 고문관들이 코만도 부대의 잘못된 운용을 막을 막기도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코만도의 작전태세가 악화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코만도 부대는 선택한 장소와 시간에 기동과 화력 집중으로 탈레반을 타격할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작전 수행간에 적절한 기간 동안 휴식 및 보충을 해야 했다. 미국 고문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던 때는 이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 특수전사령부 예하 부대들의 능력은 필요한 정비, 보충, 휴식 시간을 제공하는 작전준비태세 사이클을 유지하는데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미군과 민간군사기업들이 철수하고 아프가니스탄 공군과 특수부대의 능력이 감소하면서 아프가니스탄 군경이 방어하는 초소들은 더욱 고립됐다. 아프가니스탄 군경이 방어하는 초소들이 유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특수부대의 투입이 더 빈번해졌다. 즉 특수부대가 작전에 투입되는 시간이 과도해졌다. 코만도 부대는 72시간 이내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장비를 갖추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보급이 떨어지면 특수부대도 일반 군경 부대와 동일한 보급 및 물류 문제를 겪게 됐다.

그리고 통합기획절차가 없어지고 장기간의 작전 시 미국 고문관들의 감독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아프가니스탄 코만도 부대는 정규군 군단사령부의 전술 통제를 받게 됐다. 아프가니스탄군 군단장들은 코만도 부대를 정규 지휘통제 체계에 편입시켰다. 특정한 목표를 제거하기 위한 단순한 특수부대 작전이 정규군 군단을 지원하기 위핸 대규모 대반란전 임무로 바뀌었다. 코만도 부대는 정규군 군단이 필요로 하는 공중기동력과 우수한 훈련을 받은 자산이었다. 특히 정규군 부대의 지상 보급 역량이 부족해서 공중기동력이 필요했다. 군단장들은 코만도 부대를 72시간 이상 통제하에 두었고, 코만도 부대를 배속받게 되면 정예 보병 부대 정도로 운용하면서 초소를 증원하거나 아예 초소를 지키는 임무를 주었다. 미국 국방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렇게 특수부대를 과도하게 운용하고, 또 부적절하게 운용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특수전사령부 예하 부대들의 전투준비태세 사이클과 통합력에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Ibid., pp.16~17.

 

미군의 직접적인 전투 지원, 예를 들어 항공지원이 격감한 것도 악영향을 주었다고 지적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남아시아 정책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탈레반의 소요에 맞서싸우기 위해 추가적인 허가를 받아야 했다. 주로 공습이 통제를 받았다. 2019년 미군은 7,423회의 공습을 실시했다. 2009년 이후 가장 많은 횟수였다. 2019년 아프가니스탄 군의 고위 장교들은 SIGAR에 탈레반에 점령되었던 영토들을 탈환하는 등 진전이 있었다고 했다. 미국과 탈레반이 협정을 체결한 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군경에 대한 군사지원을 대폭 축소했다. 아프가니스탄군 통합특수전사령관이었던 사다트 장군은 이렇게 진술했다. “하룻 밤 사이에 미군의 공습이 98%나 감소했다.” 미군의 공습은 78%가 감소했다. 2020년에는 겨우 1,631회의 공습이 있었다. 1년 전에는 7,423회의 공습이 있었다. 1,631회의 공습 중 절반은 도하 협정이 체결되기 2개월 전에 수행됐다.”

Ibid., p.12.
 

 

미국의 원조 중단에 따른 급속한 붕괴는 마치 1974~75년 남베트남군의 붕괴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군사원조 중단 외에도 아프가니스탄의 국내 정치 문제, 민군 관계 등 다양한 요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읽어봐야 할 보고서입니다.

2022년 10월 23일 일요일

[번역글] 우크라이나 전쟁과 독일의 리더쉽 문제

이 글은 픽스(Liana Fix)가 미국외교협회 웹사이트에 기고한 칼럼 On the Ukraine War, Germany has a leadership problem. Here's why를 번역한 것 입니다. 유럽 내에서 독일의 위상과 이에 따른 리더쉽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서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습니다만, 결론 부분에서 독일에 우호적인 미국인의 입장을 보여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기 위해서 미국의 노선을 따라 유럽을 관리해 줄 독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겠지요. 필자는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원조할 것을 강하게 권고하는 입장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차 원조를 찬성하는 입장이라서 이 칼럼의 논조가 마음에 드는군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독일은 리더쉽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리아나 픽스

지난 2, 독일의 올라프 숄츠(Olaf Scholz)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맞아 시대의 전환(Zeitenwende)을 선포했다. 숄츠 총리의 선언으로 독일 국방 정책은 급속한 전환을 맞았다. 하지만 독일은 아직까지도 우크라이나에 전차와 같은 중장비를 제공하는데 미온적이다. 독일은 유럽 안보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수행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원조는 어느 정도인가?

독일 정부는 1월 말 이래 우크라이나에 12억 유로(11 6천만 달러) 상당의 군사원조를 제공했다. 여기에는 무기와 장비는 물론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금융 지원도 포함된다. 절대적인 액수로 보면 독일은 프랑스 보다 더 많은 원조를 제공했지만 영국이나 폴란드에는 미치지 못한다.

전쟁이 발발한 이래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군사 지원은 그 규모와 양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독일은 처음에는 방탄모와 같은 기본적인 장비를 제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연장로켓포, 자주포, 대공포, 장갑차, 방공 체계 같은 중장비를 지원하고 있다. 독일이 제공한 방공 체계 중 첫 번째 물량은 이제 막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포대는 생산 능력 때문에 2023년이나 되어야 인도될 듯 하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원조를 확대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인은 생산 능력 뿐만이 아니다. 정치적 고려도 원조를 지연시키고 있다. 독일 정부는 국내와 국제 사회의 압박을 받은 뒤에야 군사 원조를 조금씩 늘려왔다. 그래서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많은 지원을 했지만 폴란드와 같은 독일의 동쪽 이웃 국가들은 독일이 우크라이나 원조에 미온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로 인해 동유럽에서 독일의 위신은 실추됐다.

독일 정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요인은 확전에 대한 공포다. 독일은 폴란드나 발트 3국과 달리 러시아를 직면한 안보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대신 독일은 나토와 러시아의 대립이 확대될 위험을 걱정한다. 숄츠 총리의 확전에 대한 입장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재정 원조, 인도적 원조, 군사원조는 유럽 국가와 유럽의 국제 기구들이 제공한 원조를 모두 합친 것 보다 두 배나 더 많다.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은 원조를 제공했기 때문에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지원하는 문제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독일의 집권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3개 정당은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원조하는 문제를 두고 분열되어 있다. 외무부 장관 아날레나 베어보크(Annalena Baebock)가 소속된 녹색당과 재무부장관 크리스티안 린트너(Christian Lindner)가 소속된 자유민주당은 전차를 원조하는데 찬성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결정권을 쥐고 있는 숄츠 총리와 국방부 장관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민주당은 미온적이다. 독일의 대중 여론도 분열돼 있다.

 

'전환 정책'이 독일의 군사 및 안보에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는가?

독일은 에너지 및 안보 정책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대한 입장도 재정립 했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긴급 대응 조치이며 과거 독일의 대러시아 정책 기조와 안보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던 정책과 단절 하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고 국방예산을 나토의 기준인 국내총생산의 2%에 맞추고 독일 연방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1,000억 유로(978억 달러)의 특별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독일은 미국에서 F-35 전투기를 도입하고 핵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의 핵 무기를 독일로 이전하는 핵공유도 계속하려 한다.

 

독일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가?

독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정책적으로 큰 대응을 했지만 유럽 안보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때문에 동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독일에 대한 신뢰가 감소하고 있다. 또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한 국가로서 유럽에 질서와 안정을 기획해야 하는, 독일이 져야 할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 독일과 유럽의 협력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원조하는 결정을 공동으로 내리는 게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다. 또한 독일 정부는 특별기금을 투입하는 기간인 5년이 지난 뒤에도 현재와 같은 수준의 국방예산을 유지할 것을 확언해야 한다. 물론 독일이 지금 수준 보다 더 많은 국방예산을 사용한다면 훨씬 좋다. 우크라이나는 군사원조 뿐만 아니라 향후 수개월간 필요한 예산 소요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한다.

전후 평화를 추구해온 독일의 정책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독일이 군사 분야에서 취한 행동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유럽이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창했던 것을 이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유럽은 여기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미국을 충실하게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독일은 유럽의 안보에 있어서 "동지들 중 으뜸가는(primus inter pares)" 위치를 추구해야 하며 미국과 함께 리더쉽을 발휘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2021년 3월 6일 토요일

1950년대 한국 공군 증강과 제트기로의 전환

 계속 일에 치이면서 살다 보니 블로그에 글을 못 올린지 한참 됐습니다. 작년 12월쯤이면 시간 여유가 생길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가끔 안부를 묻는 분들도 계시니 생존 신고(?) 겸해서 제가 2019년 공군본부 행사에서 발표했던 글의 일부분을 고쳐서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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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공군력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공군력의 중요성을 보여준 전쟁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와 공군본부는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군 양적 증강과 현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북한 공군은 한국전쟁 기간 중 MiG-15 전투기를 보유하여 공군기를 제트기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응하려면 한국 공군도 제트기가 필요했죠. 1952년부터 1954년 한미합의의사록 체결 시 까지 한국 정부는 공군 현대화를 위해 미국 정부에 대규모의 군사 원조를 요구합니다. 이 시기 한국 정부와 한국 공군의 군사원조 요구는 한국전쟁을 통해 축적한 공군 운용 경험과 기획능력에 기반했습니다.

공군본부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공군력 증강 3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미국 정부에 이를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한국 공군의 3개년 계획에 반대했습니다. 19521022일 로벳(Robert A. Lovett) 국방부장관은 애치슨(Dean Acheson) 국무부장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한국 정부가 요청한 공군력 증강 3개년 계획을 반대하는 입장을 명확히 합니다. 그는 한국 공군본부의 계획이 비현실적이고, 공군력 증강에 필요한 인력을 수급하기도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로벳 장관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한국 공군의 규모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한국 공군이 제시한 3개년 계획을 거부하는 대신 미 제5공군예하 6146항공기지부대를 미공군고문단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1)

미국 정부 당국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공군력 증강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손원일(孫元一) 국방부장관은 1953107일과 21일에 미국방부에 다시 군사원조를 요청 합니다. 손원일 장관이 제시한 공군 증강 계획도 기본적으로 1952년에 수립된 공군력 증강 3개년 계획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손원일 장관은 한국 공군의 규모를 5개 전투비행단, 2개 폭격비행단, 1개 정찰비행단, 1개 수송비행대대로 증강하고 동시에 제트기를 도입하고자 했습니다.2) 손원일 국방부장관은 195416일 미합참의장 래드포드(Arthur W. Radford) 해군 대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한의 공군력과 해군력이 한국군을 능가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북한군에 대한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 공군과 해군에 대한 원조를 늘려줄 것을 요청했습니다.3) 이승만 대통령도 1954726일부터 813일까지 미국을 방문하여 경제 및 군사원조 문제를 논의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육군 뿐 아니라 해군과 공군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원조를 요구했습니다. 19548월 군사원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이형근(李亨根) 합동참모총장과 정일권(丁一權) 육군참모총장은 북한 공군이 255대의 제트전투기와 40대의 Il-28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4)

하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공군력 증강 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미 20개 사단에 달하는 한국 육군을 지원하는데 방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제트전투기를 추가로 원조할 경우 늘어나는 유지비용을 미국 정부가 부담해야 했습니다. 대한 군사원조 규모를 평가하기 위해 1954년 방한한 밴 플리트 사절단은 한국 공군의 규모를 1개 전투비행단으로 제한한다는 가정 하에 항공기 유지비용을 다음과 같이 산정했습니다. 10전투비행단에서 F-51F-86을 함께 운용할 경우 1957년 회계연도에 F-51 전투기 48대를 운용하는데 연간 1,036,800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F-86 35대를 운용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연간 1,764,000달러가 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F-86 전투기 1대를 1년간 운용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50,400달러로 F-51 전투기 1대를 1년간 운용하는데 소요되는 21,600달러에 비해 2배 이상 많았기 때문이죠.5)

미국 정부와 군부 내에서는 한국 공군의 규모에 대해 이견이 있었으나 한국 정부가 요구한 것 보다는 작은 규모를 선호했습니다. 1954331일 미 합동참모본부는 한국공군의 전투부대 규모를 1개 비행단(3개 대대)으로 유지하고, 한국 공군의 전력 부족을 미국 공군으로 보완하면 된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또한 한국 공군 병력을 9,000명으로 삭감하도록 지침을 내립니다. 그러나 한국 공군에 제트 전투기를 원조할 필요성은 인정했습니다.6)

미국 합동참모본부와 달리 현지의 미군 당국은 합참의 지침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군사원조 요구를 접수한 주한미군사고문단과 극동공군사령부는 1954212일 다음과 같은 내용을 미 합동참모본부에 보고했습니다. 극동공군사령부는 한국 공군의 규모를 6개 전투비행대대(2개 비행단), 1개 혼성비행전대, 1개 항공전술통제대대, 1개 전술통제전대, 1개 통신전대로 증강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또한 군사원조예산의 제약을 고려해 한국 공군에 제트기를 지원하는 것은 1956년 회계연도로 연기할 것을 건의 했습니다.7)

미국 극동공군 사령부는 1954611일 약간 수정된 방안을 제시합니다. 미국 극동공군사령부가 제시한 방안은 1956회계연도 1분기와 3분기에 먼저 50대의 F-86을 지원해 2개 전투비행대대를 제트기로 개편한 뒤 1957~1958회계연도에 추가로 4개 전투비행대대 분량의 F-86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또한 전천후 요격능력을 갖춘 F-94B 1개 대대(25)1956회계연도 3분기에 원조하여 한국 공군을 총 7개 대대의 제트전투기 대대로 증강하도록 제안했습니다. 원조할 비행기는 극동공군사령부 예하 부대가 보유한 중고 기체를 양도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또한 전투기부대의 증강에 맞춰 한국 공군의 총병력을 1958회계연도 4분기 까지 장교 1,973, 부사관 및 사병 17,989명 등 총 19,962명으로 증강하도록 제안했습니다.8) (John E. Hull) 미 극동군사령관은 극동공군사령부의 건의서를 참고하여 1954720일 미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비망록에서 한국 공군을 제트전투기 2개 비행단(6개 비행대대)을 포함한 10개 대대로 증강하고 병력을 20,000명으로 증강하는 방안을 건의합니다.9)

대한군사원조의 적정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파견한 밴 플리트(James A. Van Fleet) 예비역 대장은 한국 공군을 점진적으로 증강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미 합동참모본부가 결정한 한국 해군과 공군의 규모는 적절한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한국 공군의 전력은 제한적인 수준으로 유지하고 실질적인 공격력은 미국 공군에 의존하도록 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밴 플리트도 한국공군이 제트기로 전환하는 것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1956년 회계연도까지 한국 공군에 제트 전투기를 원조할 수 있도록 예산안을 편성해야 한다고 건의합니다. 또한 한국 공군이 1개 제트전투기 비행단을 성공적으로 운용한다면 1개 비행단을 추가로 편성하도록 원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10) 밴 플리트는 한국 공군의 F-51 비행단을 제트전투기 비행단으로 전환하는데는 최소 1년의 충실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11)

1953년부터 1954년 까지 한미 양국간에 논의된 한국 공군의 적정 규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측 요구

극동군 사령부 추천안

미 합참의 목표

밴 플리트 사절단 추천안

전천후 전투기 대대

1

1

3

3

주간 전투기 대대

6

6

전투폭격기 대대

6

전술 정찰 대대

4

1

0

1

경폭격기 대대

2

0

0

수송기 대대

2

1

1

1

항공관제 대대

1

1

0

1

총 계

22

10

4

6

[출처: “Report of Ambassador James A. Van Fleet: Korea”(1954. 7. 23), RG218 Entry UD50 Box13, II-9]


한미합의의사록체결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 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대한군사원조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당시 이승만 정부의 대외정책에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북진 통일을 주장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죠. 덜레스 미국 국무부장관은 1954726일 백악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제트전투기와 해군함정을 지원하는 방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한국 공군에 제트전투기를 지원할 경우 대북 무력 도발에 사용할 위험이 있으며, 한국 해군에 호위구축함(Destroyer Escort)을 제공한다면 이승만 라인에서 일본 어선을 몰아내는데 쓸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한국 공군에 제트전투기를 원조하는데 반대했습니다. 또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어업 문제에 대해 합의하기 전에는 추가 군사원조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덜레스 장관의 의견에 반대한 것은 미국 군부였습니다. 미국 합참의장 래드포드 제독은 한국 공군이 한국전쟁 기간 중 탁월한 공훈을 세웠기 때문에 제트전투기를 지원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국의 입장을 옹호합니다.12)

최종적으로 19541117일 한미 양국 정부간에 체결된 경제 및 군사원조에 관한 한미간 합의의사록(이하 한미합의의사록)에서는 1955년 회계연도 예산으로 지원할 한국 공군의 규모를 1개 전투비행단(3개 비행대대), 총병력 16,500명으로 결정합니다. 또한 미국 정부는 1955년 회계연도에 T-33 훈련기 10, F-86F 전투기 30대 등 제트기를 원조하고 추가로 1956년 회계연도에 55대의 F-86F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13) 이로서 한국 공군은 제트전투기를 도입하여 북한 공군에 대응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한미합의의사록체결과 함께 한국 공군의 제트기 도입 계획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19541129일에는 오산에서 한미군사회담 공군분과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서 미국 대표단은 한미합의의사록에 따라 1개 제트비행단을 창설하고 C-46 수송기를 제공하기로 합니다.14) 한미합의의사록체결 이후 한국 공군의 대미 군사원조 요구는 한미합의의사록에 규정된 범위 내로 제한되었습니다. 1955225일 한국공군본부가 작성한 1956회계연도 공군운영계획안은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 계획안의 골자는 195571일부터 시작되는 1956회계연도의 목표를 공군병력 16,500명의 한도 내에서 F-86F 전투기 도입 등 제한적인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 이었습니다. 한미합의의사록은 한국 공군의 병력 상한을 16,500명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군의 독자적인 작전 능력에 제약을 주었습니다. 공군은 병력 부족으로 인해 장거리 통신망, 방공, 군 의료 등을 육군의 자산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한국 공군은 제한된 병력을 비행부대 유지, 이를 직접적으로 지원할 지상시설 유지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15)

제트전투기를 운용할 인원에 대한 교육은 한미합의의사록이 정식으로 체결되기 전 부터 실시됐습니다. 일부 조종사는 미국 본토에서 F-86 운용교육을 받았으나 대부분은 한국에서 미 공군의 지원을 받아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미국 파견 교육을 받은 조종사는 1954년에 2, 1955년에 30, 1956년에 40, 1957년에 25명이었습니다. 한국 내에서의 제트기 전환 교육은 1954129일 오산에서 시작됐습니다. 국내 교육을 통해 1957년 말 까지 100명의 조종사가 제트기 교육을 수료했습니다. 정비사 교육은 195484일 대구 K-2 기지에서 시작됐습니다. 최초의 교육 대상은 49명이었습니다. 이어 19551월에 88, 동년 11월에 96, 19571월에 342명을 대상으로 정비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1957년 까지 199명의 정비사가 해외파견교육을 받았습니다.16)

인력 양성과 함께 1955827일에는 제10전투비행단이 F-86F 전투기 14대와 T-33 훈련기 9대를 미공군으로부터 인수했습니다. 1956년에는 F-86F 68대가 추가로 인도되어 같은 해 41일 제10전투비행단이 제트기로 기종 전환을 완료했습니다.17) 전투기의 제트화와 함께 지원 전력도 강화되었습니다. 1955429C-46D 수송기 6, 같은 해 10월 동형 수송기 11대가 도입되어 제5혼성비행단 예하 제5공수전대로 발족했습니다.18)

195881일에는 김포기지에서 제11전투비행단이 창설됐습니다. 초대 단장은 공군본부 작전국장으로 있던 장지량(張志良) 대령이었습니다. 11전투비행단은 F-86F 기종을 장비하고 전술공군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주 임무였습니다. 11전투비행단은 예하에 제111, 112 전투비행대대, 11정비보급전대, 11기지전대, 11의무전대 등의 부대를 두었습니다.19) 11전투비행단은 1958125일 제10전투비행단과 제1훈련비행단에서 T-33 훈련기를 각각 1대씩 인수해 조종사 교육을 시작했고 같은해 1230일에는 최초로 F-86F전투기를 수령했습니다. 1959228일에는 제111전투비행대대가 F-86F 25대를 완편하여 편성을 완료했습니다. 112전투비행대대는 같은 해 730일 편성을 완료했습니다.20)


주석

1) 로벳이 애치슨에게 보낸 서신(1952. 10. 22), RG330 Entry17 Box11.

2) “Memorandum by the Joint Chief of Staff to the Secretary of Defense(Wilson)”(1954. 3. 31), FRUS 1952~1954, Vol.15 Korea part.2, 1783.

3) JCS1776/424 Appendix, Korea Sec.144”, RG218 Entry UD19 Box27 Korea 1954~1956, 2

4) “General Lee, Chairman, Korean Chiefs of Staff; and General Chung Il Kwon, Chief of Staff, Korean Army visit with Admiral Radford”(1954. 8. 23), RG218 Entry UD50 Box13 Admiral Radford, 1.

5) Report of Ambassador James A. Van Fleet Korea”(1954. 7. 23), RG218 Entry UD50 Box13 Admiral Radford, TAB D.

6) “Letter from CINCFE on the Development of ROK Armed Forces”(1954. 7. 9), RG218 Entry UD50 Box13 Admiral Radford, 1.; “Memorandum for the Chief of Staff, U.S. Army”(1955. 2. 12), RG319 Entry A1 2B Box25, 1~2.

7) “Memorandum by the Joint Chief of Staff to the Secretary of Defense(Wilson)”(1954. 3. 31), FRUS 1952~1954, Vol.15 Korea part.2, 1783.

8) “Proposed ROK AF Organization prepared by Headquarters Far East Air Forces”(1954. 6. 11), 1-8.

9) “Memorandum for the Secretary of Defense”(1954. 7. 20), RG218 Entry UD50 Box13 Admiral Radford, 1.; FRUS 1952-1954 Vol.XV Korea Part II, 1854.

10) Report of Ambassador James A. Van Fleet Korea”(1954. 7. 23), RG218 Entry UD50 Box13 Admiral Radford, I-2~I-3.

11) Report of Ambassador James A. Van Fleet Korea”(1954. 7. 23), RG218 Entry UD50 Box13 Admiral Radford, II-15.

12) FRUS 1952-1954 Vol.XV Korea Part II, 1854. 이날 회의에서 래드포드 제독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Koreans had earned consideration for some additional air strength by the excellent work their air force had done.”

13) “Memorandum for the Chief of Staff, U.S. Army”(1955. 2. 12), RG319 Entry A1 2B Box25, 3.

14) 공군사 제2, 76.

15) Headquarters, ROK Air Force, “ROK Air Force Plan for FY1956”(1955. 2. 25), RG341 Entry355 Box882, A1-C1.

16) 공군사 제2, 76~77.

17) 공군사 제2, 77.

18) 공군사 제2, 78.

19) 공군사 제3, 98.

20) 공군사 제3,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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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시간 여유가 생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