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2일 수요일

포린 폴리시에 북한 정권의 향후 행보에 대한 재미있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포린 폴리시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빅터 차의 글이 한편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Kim Jong Un Is No Reformer"인데 제목에서 알수 있듯 김정은 정권이 향후 온건한 노선을 취할 것이라는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루었네요.

제 개인적으로도 빅터 차가 내놓고 있는 몇몇 전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빅터 차는 12월의 한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더라도  북한 정권이 한국 길들이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합니다. 과거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당시 우리가 당한 망신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전망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을 것 입니다. 물론 현재 야당의 주류를 이루는 친노집단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또한 새누리당이 승리한다면 박근혜가 북한에게 기선을 제압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초반에는 강하게 나갈 것이라고 지적하는데 현재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북한에서 초대형 도발을 연달아 했는데 평화 운운하며 고개숙이고 들어가는건 국제적인 비웃음거리에 불과하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북쪽에서 신중한 노선을 취하기를 바라는데 김정은이 애비 밑에서 배워먹은걸 생각한다면 영 찝찝하기 짝이 없습니다.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북한 공식 문헌의 자료적 가치에 대한 잡담

북한의 공식문헌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보니 진지한 북한 연구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연구자에 따라 북한 자료들을 대하는 태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북한 연구자들은 이 점을 심각하게 비판하고 있지요. 특히 시기가 내려올 수록 자료적으로 문제가 많아진다는 것은 공통적인 견해로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김일성의 유일체제가 확립되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이후의 문헌들이 심각하다는데 견해가 일치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읽어본 약간의 북한 문헌을 생각해 보면 동의할 만한 듯 싶습니다.

몇년전 사망한 서동만 교수는 북한의 공식문헌의 자료적 가치에 대해 이렇게 평한바 있습니다.

“빨치산혁명 전통이 이른바 혁명적 군중노선과 결합하면서 북한 사회주의는 대중적 성격을 강화해가지만 내용적으로는 비속화ㆍ통속화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고도의 이론적 모색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또한 지도부 내의 군사적 성격의 강화는 전반적인 지적 불모화의 경향을 촉진했다. 6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글들은 북한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력을 거의 잃은 슬로건 차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때부터 북한의 인문ㆍ사회과학 관련문헌에서는 구체적 사실을 담은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주체사상의 체계화와 동시에 진행되었다. 외부의 북한연구에서 북한의 공식문헌이 갖는 자료적 가치는 이때부터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지루한 김일성 교시의 나열과 그에 대한 동어반복적 해설로 가득 채워진 북한의 공식문헌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북한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란 무엇보다도 이들 문헌을 읽어낼 수 있는 무한한 인내심이었다. 70년대 이후를 대상으로 한 외부의 북한 연구가 주로 이데올로기 분석으로 시종하게 된 것도 이때문이다. 남한을 포함해서 외부의 북한연구가 낙후된 중요이유는 무엇보다도 냉전상황에 있었지만, 60년대 중반 이후 북한 내 지적 불모화 경향이야 말로 그에 못지않게 결정적인 이유라 할 것이다.
서동만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북조선 연구 : 서동만 저작집』, (창비, 2010), 73~74쪽.

얼마전에 읽었던 일본의 소련학자 시모토마이 노부오의 평은 약간 더 신랄한 듯 싶습니다. 인용을 해보죠.

“북한을 둘러싼 정치ㆍ정치사 연구, 그 중에서도 특히 국내정치나 국제관계에 대해 북한 측이 정보를 비밀로 하는 체질로 인해 사료나 문헌 부족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공식 출판물을 이용하더라도 진상해명은 불충분하다. 그 결과 지역연구를 행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불리하다. 사실 『김일성 저작집』과 같은 대부분의 문헌을 보아도, 이 책이 논문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1956년 중반 8월종파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학이 본질적으로 학문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시모토마이 노부오 지음/이종국 옮김, 『모스크바와 김일성 : 냉전기의 북한 1945~1961』, (논형, 2012) , 9쪽.

언어장벽의 문제도 약간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북한 문헌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 때문에 해외의 북한 연구자들은 냉전 종식이후 공개되기 시작한 동유럽 사료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소련과 동독의 외교문서가 상당히 수집되어 있지요. 사실 제 개인적으로도 북한 공식문헌 보다는 소련이나 동유럽 문헌이 훨씬 신뢰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연구자별로 편차가 있어서 김광운 같은 경우는 북한 건국과정을 거의 북한문헌만 활용하여 재구성하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시모토마이 노부오下斗米 伸夫가 그런 경우겠습니다. 그리고 시모토마이 노부오보다 먼저 1950년대의 북한을 연구한 발라즈 샬론타이Balazs Szalontai도 거의 대부분 소련과 동유럽 사료를 바탕으로 서술을 했지요.(발라즈 샬론타이의 Kim Il Sung in the Khrushchev Era: Soviet-DPRK Relations and the Roots of North Korean Despotism, 1953-1964는 제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북한 연구서입니다.)

결국 진지한 연구가 1960년대 이후로 확장되려면 그 시기의 소련과 동유럽, 혹은 중국 자료를 활용할 수 있어야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해당 시기의 북한 문헌을 읽어보면 그럴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시기가 내려갈 수록 북한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북한의 폐쇄성도 강화되는데 외국 문헌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동독 자료의 경우 전후 복구시기에는 동독의 기술인력이 대거 파견되거 지방 곳곳에 배치되기 때문에 꽤 심도깊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50년대 이후의 동독 자료는 저도 아직 읽어본게 하나도 없어서 함부로 이야기 하는게 무리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이 감소하는 것 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련과 동유럽 자료를 대거 활용하고 있는 해외의 북한 연구자들이 주목할 만한 연구를 내주길 바랄 뿐입니다.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냉전기 "독일편향적" 독소전쟁 서술을 비판하는 경향에 대한 잡상

습기찬 여름철 눅눅해지는 헌책들을 정리하다가 빼든 Stalingrad to Berlin 때문에 뻘글 하나 써봅니다.

유명한 군사사가 데이빗 글랜츠David Glantz가 1987년에 발표한 「2차대전기 동부전선에서 전개된 작전에 대한 미국의 시각American Perspectives on Eastern Front Operations in World War II이라는 글은 발표 당시 냉전으로 인한 사료적 한계, 반공적 시각이 결합된 영어권의 2차대전 인식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이 글이 발표된 시점은 마침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이 진행되던 시기와 맞물리기도 합니다. 발표된 시점 때문인지 몰라도 이 글은 몇년 뒤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될 독소전쟁사 연구의 신경향을 알리는 나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글랜츠의 글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비판하는 것이기에 이 글이 냉전기 서방의 독소전쟁사 연구를 총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적인 틀에서 25년전 글랜츠가 비판한 내용은 핵심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습니다. 존 에릭슨John Erickson과 같은 걸출한 연구자가 소련의 목소리를 담은 몇 권의 대작을 내기도 했습니다만 냉전기 영어권의 독자들이 접할 수 있던 독소전쟁 관계 서적은 독일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 다수였고 소련의 시각을 반영한 것은 소련의 공식출판물을 영어로 번역한 것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따져보면 미국의 독일 편향을 비판한 글랜츠도 몇몇 저작에서 지나친 러시아 편향이라는 문제를 드러냈지요. 더 들어가면 냉전기 소련의 시각을 반영한 저작들도 정치적인 이유로 왜곡이 극심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냉전기 영어권에서는 오히려 소련 편향으로 인한 역사인식의 왜곡도 제법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명한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해석이지요. 오늘날에는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만 냉전시기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서술은 존 에릭슨의 The Road to Berlin나 쥬크스Geoffrey JukesKursk는 거의 전적으로 소련의 공식서술에 따라 쿠르스크 전투를 재구성했으며 1990년대 까지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의 틀을 만들었지요.

재미있는 점은 냉전기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서술은 독일자료를 활용한 쪽이 더 정확하다는 점 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Stalingrad to Berlin은 글랜츠가 1987년에 쓴 글에서 상당히 높게 평가한 역작입니다. 이 책은 1966년에 출간됐는데 제한적으로 소련 자료들을 활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료는 미국이 노획한 독일 문서들이죠. 작전단위에서 서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술이 세밀하지는 않지만 출간된 시점을 고려하면 걸작이라 칭할만 합니다. Stalingrad to Berlin에서는 쿠르스크 전투의 클라이맥스(???)라 할만한 프로호로프가 방면의 전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편 남부집단군의 상황은 호전되고 있었다. 7월 11일 친위대 제2기갑군단은 쁘숄Псёл강 북안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소련군은 아직 독일 제48기갑군단의 작전지역에서는 프숄강 남쪽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제4기갑군은 프숄강 남안의 소련군이 버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호트Herman Hoth는 프숄강 북쪽으로 진출하는 것은 쉬울 것 같다고 보고했다.바투틴Никола́й Фёдорович Вату́ти은 가용가능한 예비대가 고갈되기 직전이었다. 반면 만슈타인은 아직 쓸수 있는 패가 남아있었다. 만슈타인은 쿠르스크로 향하는 최후의 일격에 무게를 실을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제24기갑군단(제23기갑사단과 친위대 비킹사단으로 편성)을 제1기갑군 후방의 예비대에서 빼내 벨고로드 지구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켐프 분견군Armee-abteilung Kempf은 도네츠강 동안에서 공세를 시작한 뒤 6일 동안 진격에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7월 11일에 필사적으로 공세를 가해 제3기갑군단이 북쪽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다음날 바투틴은 스텝전선군에 소속되어 있던 제5근위군과 예비대로 있던 제5근위전차군을 반격에 투입했다. 그러나 제3전차군단은 진격을 계속했으며 13일 밤에는 상당한 규모의 소련군을 제3기갑군단의 측익과 친위대 제2기갑군단의 우익으로 포위할 수 있었다.
Earl A. Ziemke, Stalingrad to Berlin : The German Defeat in the East, (USGPO, 1966), p.137.

1996년에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던 나이페George NipeDecision in the Ukraine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바로 아시겠지만 사실상 나이페의 저작은 친위대 제2기갑군단에 중점을 두고 전술단위로 자세한 분석을 했라는 점을 제외하면 짐케가 30년 전에 했던 서술의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냉전기 소련의 공식서술 보다는 객관적인 서술이었던 셈 입니다.

짐케는 그 뒤에 쓴 Moscow to Stalingrad : Decision in the East에서도 마찬가지로 독일측 사료를 중심으로 독소전쟁의 작전사를 서술했는데 여기서도 냉전기 소련의 연구가 외면하거나 놓친 부분들을 독일 사료를 활용해 잘 잡아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코프가 1942년 겨울 중부집단군을 상대로 감행한 “마르스” 작전에 대해 서술한 것 입니다. 서방측 문헌에서 이 작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대부분 독일자료에 의존한 짐케가 처음이었던 것 입니다. 이렇게 냉전기의 “독일편향”적인 저술들은 소련측이 외면하거나 왜곡한 사실들에 균형을 맞춰주는 기능을 어느정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냉전기 독소전쟁 서술에서 “독일편향”을 비판하는 것이 때로는 너무 야박한건 아닐까 하는 잡생각도 들곤 합니다.

2012년 8월 9일 목요일

외계문명(?????)의 지혜

꽤 즐겁게 읽었던 소설의 한 토막.

빌리는 지구인들이 벌이는 그 전쟁과 같은 살인 행위에 트랄파마도어인들이 곤혹스러워하거나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지구인들의 잔학성과 굉장한 무기들이 결합되면 결국에는 순결한 우주의 한 부분이, 나아가 전체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염려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에 관한 질문은 한번도 나오지 않았고, 빌리 자신이 말을 꺼낸 뒤에야 비로소 나왔다. 동물원 관객 중에 누군가가 해설자를 통해 지금까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빌리의 대답은 이랬다.

“한 행성의 모든 주민이 어떻게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태초 이래 무의미한 살육에 열중해 온 행성에서 왔습니다. 내 나라 사람들이 급수탑에 넣고 산 채로 삶아 죽인 여학생들의 시체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시 자기들이 절대 악과 싸우고 있다는 긍지에 차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빌리는 드레스덴에서 삶아져 죽은 시체들을 보았다.

“그 뿐입니까? 나는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에는 삶아져 죽은 여학생들의 오빠와 아버지들이 살육한 인간들의 지방으로 만든 촛불로 밤을 밝혔습니다. 지구인들은 우주의 골칫거리임이 분명합니다! 다른 행성들이 지금은 무사하더라도 곧 지구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 내게 비결을 좀 가르쳐 주세요. 내가 지구로 가져가서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게요. 어떻게 한 행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까?

빌리는 자기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랄파마도어인들이 작은 손을 쥐어 눈을 가리는 것을 보고는 당혹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그 몸짓이 무슨 뜻인지는 분명했다. 그가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 이었다.

“제발- 말씀 좀 해 주세요?”

그는 몹시 풀이 죽어 안내원에게 말했다.

“내 말이 뭐가 그리 바보 같다는 거지요?”

“우린 우주가 어떻게 멸망할지 아는데-” 하고 안내원이 말했다. “지구는 그 일과 아무 관계가 없소. 지구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만 빼면.”

“어떻게- 우주가 멸망합니까?” 빌리가 말했다.

“우리가 날려 버리지. 비행접시에 쓸 새 연료를 실험하다가 말이오. 트랄파마도어의 시험 조종사 하나가 시동 버튼을 누르면 온 우주가 사라져 버리는 거요.”

그렇게 가는 거지.

“당신들은 그것을 알고 있으니까 예방할 방법도 있을 것 아니에요?” 빌리가 말했다. “그 조종사가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까?”

“그는 이제까지 늘 버튼을 눌렀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요. 우리는 늘 그에게 그렇게 하게 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요. 그 순간은 그런 식으로 되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하고 빌리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구에서 전쟁을 예방한다는 생각도 어리석은 거군요.”

“물론이오.”

“하지만 이 행성은 평화롭잖아요?”

“오늘은 그렇소. 다른 날들은 당신이 보았거나 읽은 어떤 전쟁보다 잔혹한 전쟁을 벌이지. 우리가 전쟁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그냥 전쟁을 보지 않을 뿐이오. 무시해 버리는 거지. 우리는 영원토록 즐거운 순간들만 보며 지내요. 오늘 동물원에서 처럼. 이 순간은 정말 멋지지 않소?”

“멋집니다.”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지구인들도 그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요. 끔찍한 시간은 외면해 버리고 좋은 시간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오.”


커트 보네거트 지음/박웅희 옮김, 『제5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아이필드, 2005), 138~141쪽

2012년 8월 6일 월요일

Wolfram von Richthofen : Master of the German Air War

독일공군에 관한 책은 세기 힘들정도로 많지만 독일공군의 장군을 다룬 평전은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저작으로는 악명높은 데이빗 어빙David Irving이 집필한 독일공군원수 밀히Erhard Milch의 전기인 The Rise and Fall of the Luftwaffe : The Life of Field Marshal Erhard Milch 정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2008년에 출간된 제임스 코럼James S. Corum의 리히토펜 전기, Wolfram von Richthofen : Master of the German Air War는 독일공군 장성을 주제로 삼은 보기 드문 저작입니다. 제임스 코럼은 독일공군의 창설에서 프랑스전역 까지를 다룬 The Luftwaffe: Creating the Operational Air War, 1918-1940의 저자로서 독일공군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제임스 코럼은 기존의 저작에서도 리히토펜의 역할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는데 결국에는 리히토펜을 독립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확대했습니다. 그 결과물인 이 전기는 제 기준에서 본다면 상당히 좋은 저작이라고 생각됩니다. 보기 드문 독일공군 장성에 대한 전기일 뿐만아니라 상당히 균형이 잡혀있으며 독일공군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는 저작입니다.

먼저 리히토펜에 대한 군사적인 측면의 서술을 살펴보지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코럼은 기존의 연구에서 독일공군 내에서 리히토펜의 역할에 대해 다룬바있습니다. 군인으로서 리히토펜은 독일공군의 교리와 조직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개척자이자 유능한 야전지휘관으로 요약됩니다. 스페인내전에서 보여준 탁월한 지휘능력과 현대적인 공지협동작전의 기틀을 확립한 것 만으로도 리히토펜의 군사적 능력은 높게 평가받을 만 합니다. 저자는 2차대전 초기 리히토펜이 승승장구하면서 항공사단장에서 항공군단장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공군원수로 진급하여 항공군을 지휘하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합니다. 또한 스페인내전과 2차대전 기간 중 보여준 탁월한 군사외교가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리히토펜은 스페인내전 당시 부터 탁월한 정치감각을 보여줬으며 2차대전 발발 뒤에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 군사외교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동맹국과의 관계가 원할하지 못했던 독일에서 리히토펜과 같은 인물은 독특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리히토펜의 성공을 단순히 그의 능력만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탁월한 군사사가 답게 리히토펜이 참여한 각 전역의 배경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농업국가로서 근대적인 공군을 건설할 능력이 부족했던 폴란드, 규모는 컸으나 근대적인 항공전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했던 프랑스와 소련 공군에 대한 서술은 독일공군이 어떻게 해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리히토펜이 살았던 시대와 그가 몸담았던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독일이 소모전에 말려들어가면서 서서히 패배로 치닫는 과정에서는 독일군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영국본토항공전에서 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정보력의 부족, 그리고 독소전쟁으로 이어지는 거시적인 전략의 결여로 인한 방향성 상실은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독일육군과 마찬가지로 작전 단위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독일공군이 잘못된 전략으로 소모되는 과정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독소전쟁에서 리히토펜의 제8항공군단이 운용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독일공군이 능력이상의 임무를 담당하면서 서서히 붕괴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독일공군이 소모전으로 붕괴되는 모습은 리히토펜이 마지막으로 지휘한 지중해전역에서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리히토펜이 1940년 공군소장의 계급으로 항공사단을 지휘했을 때 1943년에 공군원수의 계급으로 항공군을 지휘했을 때 보다 더 많은 항공기를 지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전략의 결여로 인한 소모전의 결과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한 이 저작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균형이 잘 잡혀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데이빗 어빙의 밀히 전기가 독일측의 시각을 강하게 반영해 우호적인 논조로 씌여졌다면 코럼의 리히토펜 전기는 서술대상의 과오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스페인내전 당시 게르니카 폭격에 대한 서술에서 이 점이 두드러집니다. 코럼은 케르니카 폭격은 민간인을 목표로 한 ‘테러폭격’이 아니었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민간인 피해도 과장된 것임을 지적하지만 동시에 리히토펜은 군사적인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군인으로 스페인 민간인의 희생에는 무관심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아마 어빙과 같이 독일측에 우호적인 저자가 같은 내용을 서술했다면 게르니카 폭격이 민간인에 대한 테러공격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리히토펜에 면죄부를 주려 했을 것 입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히틀러와의 관계도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저자는 리히토펜이 다른 귀족 출신들과 마찬가지로 바이마르 공화국체제 보다는 나치즘에 우호적이었으며 또한 히틀러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음을 지적합니다. 코럼은 1944년 7월 20일의 쿠데타에 보여준 태도를 통해 완고한 보수주의자로서의 리히토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리히토펜이 히틀러를 지지한 동시에 히틀러의 지지를 받는 인물로서 나치체제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비단 히틀러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프로이센 군사귀족으로서의 보수성에 대한 서술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리히토펜의 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타국에 대한 우월감은 그런 사례의 하나입니다. 저자는 리히토펜의 한계를 지적함으로서 리히토펜을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오류들이 있어 다소 아쉽기는 합니다. 특히 군사용어나 인명의 오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 입니다. 코럼은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를 계속해서 ‘폰 파울루스’라고 적고 있는데 코럼 같은 군사사가가 이런 실수를 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육군이나 소련군의 부대명칭을 표기는 데 있어서도 사소한 오류가 몇개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몇가지 오류에도 불구하고 리히토펜 전기는 매우 훌륭한 저작으로 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