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9일 토요일

클린턴 국무장관의 재미있는 글 한편

이런 저런 할일이 많다 보니 블로그에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재미있는 글도 꽤 많이 접해서 그중 몇개는 번역을 해볼까 하기도 했지만 이것 저것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가서 건드리지도 못하게 됐군요.

얼마전에 읽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무부장관의 글, America's Pacific Century도 마찬가지입니다. 꽤 재미있어서 번역을 해볼까 했는데 영 시간이 나지 않는군요. 이 글은 제가 9월에 번역해서 소개했던 America's Coming Retrenchment : How Budget Cuts Will Limit the United States’ Global Role(번역문)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향후 전략적인 중심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둬야한다는 주장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만 국무부장관이 공식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조금 재미있군요. 대학생 시절 윌리엄 페리의 Defense in an Age of Hope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 글에 대한 논평들도 흥미롭습니다. 함께 읽어보시면 더 좋을 것 같군요. Debating the Pacific Century

지금은 번역할 시간이 되지 않아 링크만 걸어뒀지만 시간이 된다면 뒷북으로라도 번역을 해 볼까 생각중입니다.

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언제나 일요일

김상현金相賢 의원이 민중당의 초선 의원이었던 시절의 일화라는 군요.

한번은 강기천姜起千 해병대 사령관과 술을 먹게 되었다. 해병대 준장 하나를 대동하고 나온 강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생도처럼 단정한 자세로 앉아 맥주잔에 조니워커를 가득 따르더니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리고 내게로 잔을 넘겼다.

“김 의원, 내일은 일요일 입니다.”

“강 장군, 내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목요일 입니다.”

“우리가 오늘 밤 뻗어서 내일 아침 출근을 하지 못하면 그게 바로 일요일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두 번을 만났는데 두 번 다 내가 졌다.

김성동, 『한국 정치 아리랑 : 한 정치인이 살아온 대한민국 현대사』, (동녘, 2011), 170쪽
솔직히 50%정도 존경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왠지 이것이야 말로 한국인이다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ㅋㅋㅋ. 인용한 책에 따르면 결국은 김상현 의원이 세번째에는 복수(!?)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한국인 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소소한 일화는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묘하게 사람을 잡아 끄는 맛이 있어서 좋습니다. 자서전류가 매력적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2011년 10월 22일 토요일

카다피의 좋았던 시절...

Foreign Policy는 웹사이트에 매우 좋은 화보를 자주 게재하기 때문에 꽤 마음에 듭니다. 카다피가 세상을 뜨자 발빠르게 카다피의 좋았던 시절 사진들을 올려놓는군요. 사진의 대부분이 카다피가 쿠데타를 일으킨지 얼마 안된 시점의 사진들입니다.

사진 출처 : Young Qaddafi and King Idris(Foreign Policy)


카다피가 처참하게 사살되었다는 보도를 접하다가 쿠데타 직후의 위세등등한 사진들을 보니 기분이 묘합니다.

2011년 10월 17일 월요일

어떤 역사소설...


한국 역사소설 코너에 있는 Z건담, 역습의 샤아, 건담UC... 음. 그리프스 전역은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던 듯.

2011년 10월 16일 교보문고 광화문점

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이승만 시기 민군관계에 대한 신익희의 통찰

부산정치파동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민군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군부 일각에서 이승만의 헌정유린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기도한 것 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육군참모총장 이종찬(李鐘贊) 중장은 미국에 쿠데타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습니다. 라이트너(E. Allan Lightner, Jr.) 미국 대리대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종찬 중장은 약간의 육군과 해병대 병력을 동원하면 이승만 대통령과 이범석 내무부장관, 원용덕 계엄사령관을 쉽게 체포하여 상황을 정상화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은 권력에 관심이 없으며 새 대통령을 선출하면 일주일 내에 군대를 복귀시킬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종찬 중장은 한국군이 유엔군의 지휘계통에 있는 만큼 미국의 지지만 있다면 쿠데타를 결행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1) 이종찬 중장은 정치 정상화를 미국이 지원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종찬 장군은 미국이 국회정상화를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무렵 제2병참사령부 예하의 병력을 동원해 이를 지원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2)

이렇게 이종찬 중장이 쿠데타 또는 미국의 이승만 제거에 협력하려 했던 것은 생각 이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익희의 측근이었던 신창현(申昌鉉)의 기록에 따르면 부산정치파동이 일어난 직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3) 꽤 재미있는 내용이니 조금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전략)

이날 저녁 무렵 서상렬(徐相烈)이 문병차 내방하였다. 서상렬은 일본 유학 중 학도병으로 끌려 나가 북지(北支) 전선에서 전투에 가담하여 중국군을 토벌하다가 일본 진중을 탈출하여 중경 임시정부의 경호대장을 지낸 사람이다. 경호대는 내무부에 예속되어 있었던 관계로 해공에게 가깝게 수종하던 터수였다.
이날 이 사람이 와서 뵙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박사의 폭거를 통렬하게 비난하였다. 그런 뒤 분을 참을 수 없다면서 “대구에 있는 육군 참모총장과는 지기(志氣)가 상통(相通)하는 처지이니 군을 동원해서 이 폭정을 응징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이 말을 듣고 해공께서 “그거 아주 위험한 발상이야. 우리가 공산당과 싸우느라 병력을 자꾸 증강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 하지만 전체 국민에 대한 수치 비례로 보아 너무나 방대하여 앞으로 어떤 사람이 대통령에 될지 모르겠으나 이 군부를 다루는 일이 아주 중요한 문제로 남을 것이오.
아직은 이박사의 과거 독립운동 역사로나 국제적 성망 등 카리스마적 위력으로 지탱해 나가고 있는데, 지금 그분이 국헌을 뒤엎고 주권을 짓밟는다고 하여 군대의 힘을 빌어 확청(廓淸)하였다고 칩시다. 당장은 분풀이도 되고 속시원하겠지만, 그 군권 밑에 매달려 있는 정부가 무슨 민주 정부가 되겠으며, 어떻게 정부 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군부가 정치에 깊숙이 간여하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 이라오. 그것은 군부가 자기들 끼리 또 찢고 당기고 할 테니 결국 군부 쿠데타라는 악순환의 씨를 뿌려 준 결과가 된다는 말이라오.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준조 절충(樽俎折衝)하고 토론ㆍ협상해 가며 차츰차츰 시정하고 광정(匡正)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라오. 나라와 민족의 일에 감정은 절대 금물이지. 우리가 길의 중요한 요지를 목이라고 하는데, 정치는 긴 목 잡고 한다는 것이라오. 감정도 금물이려니와 조급하게 굴어서도 안 되지요. 여기에 정치력이 아닌 무력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발상은 위험 천만한 일이야. 양호유환(養虎遺患) 되고 말아요. 아예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말아요.”

(후략)

신익희의 통찰력은 주목할 만 합니다. 물론 이종찬 중장은 신태영 국방부장관이 계엄군을 증원하기 위해 2개 대대를 차출하라고 했을 때 군의 정치개입에 반대하며 거절한 바 있고 권력에는 뜻을 두지 않은 태도로 존경받는 군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마무리가 잘 되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요. 군부가 쿠데타를 생각할 정도로 강력해진 시점에서 그것이 일어나지 않은 주된 원인은 신익희가 높이 평가한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군부통제와 통치능력에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민군관계에 주목하는 연구자들은 군부내 파벌을 이용한 이승만의 군부통제가 효율적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지요.4) 미국이 이승만 제거계획을 구상하다가 대안을 찾을 수 없어 포기한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 이승만은 개인의 정치력으로 강력한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이라는 강력한 통제자가 사라지자 군부를 견제할 존재는 국내정치무대에 존재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 조성되지요. 5ㆍ16 쿠데타를 이야기 할 때 부산정치파동을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입니다.

신익희가 예상했던 것 처럼 5ㆍ16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민주당에 실망한 상당수의 국민들은 군부가 ‘구악’을 일소하고 혁신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그대로 권좌에 눌러앉아 이후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세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장기집권을 하게되지요. 1961년은 군대가 양적으로 팽창한 상태에서 그나마 군부와 균형을 맞출만한 집단은 ‘썩어빠진’ 기성 정치집단인 민주당 정도였고 기성 정치권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군부는 견제세력 없이 독주하게 됩니다. 공짜란 존재하지 않았고 군부를 통해 손안대고 코를 풀어보려던 세력은 제대로 한 방 얻어맞게 됩니다.



1) ‘Oral History Interview with E. Allan Lightner, Jr.’(1973. 10. 26), Truman Library, p.114
2) ‘Memorandum by the Director of the Office of Northeast Asian Affairs(Young) to the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Far Eastern Affairs(Allison)’(1952. 6. 13),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2~1954 Vol. XV Korea, Part 1, (USGPO, 1984), p.333
3) 申昌鉉, 『내가 모신 海公 申翼熙 先生』, (海公申翼熙先生紀念會, 1989) , 505~506쪽
4) 도진순ㆍ노영기,「군부엘리트의 등장과 지배양식의 변화」,  『1960년대 한국의 근대화와 지식인』, (선인, 2004), 67~68쪽

약간의 지름질

1. 오늘은 잠시 시간을 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소소한 지름질을 했습니다. 먼저 종로2가에 있는 알라딘 중고매장을 들렀는데 생각보다 쓸만한 책이 많더군요. 월간조선사에서 나온 『제임스 릴리의 아시아 비망록』,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러시아 사상가』, 그리고 자잘한 소설책을 몇 권 샀습니다. 특히 『러시아 사상가』는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할인 행사를 할 때 사려다가 깜빡하고 사지 않았는데 아라딘 중고매장에서 훨씬 더 싼 9,000원에 팔고 있더군요. 나름 횡재했습니다. 생각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중간에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세 천황 이야기』가 여러권 들어와 있는걸 보고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나온지 2년 쯤 된 책인데 벌써 떨이로 나오는 걸 보면 잘 안팔리는 모양입니다. 꽤 괜찮은 교양서적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사보시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 헌책방을 몇 군데 돌아다닌 다음에는 네이버하비에 들러서 모형을 조금 샀습니다.


즐겨만드는 야라레메카(;;;;) M4A1도 하나 사고 브롱코에서도 1/48 AFV를 만든다길래 1번타자인 스태그하운드를 하나 샀습니다.

별로 인기 없는 1/48만 만지작 거리다 보니 브롱코에서 만든 모형은 처음 사봤는데 런너상태만 보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에칭도 하나 넣어주고 사출상태도 깔끔해 보이네요. 뭐, 직접 만들어보기 전에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지금 만지작 거리고 있는 타미야의 왕호랑이를 생각해보면 에칭을 넣어주는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타미야의 왕호랑이는 뭔가 좀 허전해 보여 보이저의 에칭도 조금 붙여주는 중 입니다. 브롱코는 하비보스 처럼 에칭을 넣어주니 좋군요.

그리고 하비보스의 1/48은 앞으로 수입이 잘 안될것 같다는 유감스러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하기사 못생긴 M4 셔먼시리즈와 공산당 땅크만 별로 인기없는 스케일로 찍어냈으니 잘 팔릴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별 인기없는 스케일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유감이군요.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이탈리아의 국력에 대한 아주 탁월한 평가

이탈리아의 국력, 특히 군사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인용되는 평가가 하나 있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아주 왕성한 식욕을 가졌지요. 그런데 이빨이 영 시원찮습디다.”
(Diese Italiener, sie haben zwar großen Appetit, aber schlechte Zähne.)

비스마르크가 프랑스 대사에게, 1881년.

Hendrik L. Wesseling, Teile und herrsche: die Aufteilung Afrikas 1880-1914, (Franz Steiner Verlag, 1999), p.25

재치도 있거니와 아주 정확한 평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탈리아인들에겐 좀 안됐지만. 그런더 더 안습인건 2차대전이 발발할 때 까지도 이탈리아의 군대가 시원찮아서 2차대전에 대한 저작에서도 이미 2차대전으로 부터 60년 전에 있었던 저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는 겁니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다 보니 외교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은 한번쯤 이 일화를 접해 보셨을 겁니다;;;;;

이런 일화를 보면 비스마르크는 만담가의 자질도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2011년 10월 1일 토요일

리박사의 외교기조

리승만 박사의 외교 기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한마디.

Specifically, we need more divisions, more air and more sea forces.

‘Hagerty diariy, July 27, 1954’,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2~1954, Vol. XV Korea, part2, (USGPO, 1985), p.1845

단순 명쾌합니다. 더 많은 육군사단, 더 많은 공군, 더 많은 해군. ㅋㅋㅋ

아 물론,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요구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읽으면 읽을수록 입가에 미소가...

아아. 이거 정말 중독될 것 같은 문구입니다. 꿈에 나올것 같아요.


More! Mor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