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안녕들하시죠?

모두 2010년은 즐겁게 맞으셨습니까?

2010년에도 변함없이 저의 비실용적이고 시시껄렁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목표(?)는 2010년에는 조금 더 재미있는 글을 많이 쓰는 것 입니다. 그것이 제 블로그가 지향하는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로 진지한 듯 하면서도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가 오가는 대학가의 맥주집" 같은 곳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서로 낄낄거릴 수 있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 이지요^^

(OLIVER LANG/AFP/Getty Images)
블로그를 만드는 목적은 사람마다 제각각 이겠습니다만 제 목표는 제가 관심을 가진 이야기들을 부담없는 분위기에서 즐겁게 이야기 하는 공간을 가지고자 하는 것 입니다. 아마 실제 생활에서 그런 분위기를 가장 잘 즐길수 있는 곳이 주말저녁의 맛있는 안주가 나오는 맥주집이 아닐까 합니다.

제 썰렁한 블로그는 맥주도 없고 안주도 없지만 "진지한 듯 하면서도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 즐겁게 오갈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한 2010년이 되길 빌어봅니다.

2010년 12월 19일 일요일

어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어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 한 토막...

영국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 이었다. 그리고 (데즈몬드 영의) 책이 총선 기간에 발간된 것과 비슷하게 영화(사막의 여우)도 1951년 보수당이 재집권을 위한 선거운동을 펼치던 시기에 개봉되었다. 실제로 BBC는 엘 알라메인 전투 기념일에 처칠과 몽고메리가 연설한 것을 방송하는 것은 특정 정당에 유리한 행위라고 판단해서 그 대신 ‘사막의 여우’의 영화음악을 방송하는 기발한 행동을 했다.

Patrick Major, “‘Our Friend Rommel’ : The Wehrmacht as ‘ Worthy Enemy ’ in Postwar British Popular Culture”, German History Vol. 26, No. 4, p.525

전쟁이 끝난지 10년도 채 안된 시점인데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향신문이 어렵긴 어려운가 봅니다

RSS피드를 확인하던 중 경향신문에 이런 글이 올라온걸 봤습니다.

읽으면서 손발이 엄청나게 오글거리더군요;;;;




경향신문의 사정이 어렵다더니 외부 기고도 매우 저급하기 짝이 없군요. 언젠가 통일이 될 테니 미리 NLL을 양보하자는군요. 아주 괴상한 논리이고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통일은 되고 나야 알 일이고 지금은 북한이 다양한 수단으로 공갈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NLL을 양보하면 북한이 꽤나 고마워 하겠습니다? 우리가 NLL을 양보하면 남과 북이 손에 손잡고 하하하 할 수 있을 줄 아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이 양반은 웰컴 투 동막골 따위의 허접한 평화론을 가진 듯 싶군요.

수십년간 쌓여온 정치적인 갈등이 이따위 저급한 평화론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사태가 끝났겠지요.


잡담 하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사한 구호를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날 구걸한다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다!

헬무트 콜 회고록을 읽다가 고르바초프의 경제 원조 요구에 대한 부분에 눈길이 갔습니다. 해당 부분이 꽤 재미있어서 한번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9 월 7일 오전 나는 고르바초프와 전화 통화를 했다. 코카서스 회담 이후 처음 갖는 대화였다. 고르바초프는 전화에서 나를 압박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인생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고 말문을 열고는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등산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 다음 고르바초프는 본래의 관심사로 화제를 옮겨 소련군의 동독 지역 주둔 비용 협상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전해왔다.

나는 소련군 철수 병력을 위해 대규모 지원을 하기로 양국간에 이미 합의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철수 때 까지의 주둔 비용과 거기다 철수 비용까지 요구하고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는 통일 조약이라는 역사적 합의가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이견으로 위기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소련은 그렇게 좀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의사를 전하기 위한 노골적인 암시였다.

나는 고르바초프에게 소련에 대한 서독의 호의를 강조하고는 80억 마르크 지원 계획을 되풀이해 전했다. 그러자 그는 그 같은 액수로는 협상이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면서 자기들 계산으로는 주택 건설과 그에 따른 사회 간접자본에만도 110억 마르크가 필요하다는 것 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아주 노골적으로 “독일 측의 제안은 이제 까지 이룩해 낸 공동 작업 결과를 허물어 뜨리게 될 것 입니다. 소련의 요구는 결코 구걸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솔직히 얘기하자고 하고는 장애물을 만들어 그동안 이룩해 놓은 것을 다 날려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운명을 결정하는 소련군 체류 및 철수 문제”를 자신이 요구하는 지원 액수와 직접 연계시키고 나왔다. 그는 곧 있을 2+4자 회담과 관련해 외무장관인 셰바르드나제에게 어떤 훈령을 내렸으면 좋겠냐고 나에게 물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지금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덫에 걸려 있는 느낌입니다.”

헬무트 콜/김주일 옮김, 『헬무트 콜 총리 회고록 :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해냄, 1998), 314~315쪽

요즘 생각하는 문제 때문에 독일 통일과 관련된 책들을 다시 조금씩 뒤적이고 있는데 진지한 생각보다는 장난스러운 생각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자잘한 일화들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망상이 피어나더군요. 여기서 인용한 고르바초프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거장 김화뷁님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바로 이거;;;

고르바초프 : 아까 전에 날 보고 구걸한다고 했었지? 난 그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콜 : !!!

고르바초프 :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날 구걸한다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다!!!

콜 : !

부시 : 무... 무슨 소리야!

고르바초프의 진짜 심정은 이런게 아니었을지... 망상은 그만두고 좀 진지한 생각을 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ㅋ

What I Found in North Korea

며칠 전 언급했던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을 번역해 봤습니다. 이미 언론에도 많이 언급이 되어 뒷북인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 일단 저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헤커 박사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실들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별도로 붉은 색 표시를 했습니다.

지난 11월 12일, 내가 마지막으로 영변 핵 시설을 방문했을 때 북한 과학자들은 나와 나의 동료, 루이스(John W. Lewis)와 칼린(Robert Carlin)에게 작은규모의, 최근에 완성된 산업수준의 우라늄 농축시설과 건설중인 실험용 경수로를 보여줬다.

나는 두 곳의 케스케이드(cascade) 실에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설치된 것과 최신의 통제실이 갖춰진 것에 놀랐다. 그리고 먼길을 거쳐 평양으로 귀환한 뒤 이 발견의 정치적 의미가 파장을 일으켰다. 북한의 핵 개발을 제한하는 것과 한반도의 조용한 긴장상태가 지금보다 중요한 적은 없었다. 특히 지난달 하순 남북한이 서해에서 충돌한 사건을 고려한다면 특히 더 그러하다.

비록 나와 다른 비확산 전문가들은 오래전 부터 북한이 우라늄 농축 계획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한 근거에 의거해 확신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규모와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는 십수개의 1세대 원심분리기가 아니라 완전한 가동상태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는 최신형 원심분리기들이 셀수 없이 줄지어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북한측은 우리에게 원심분리기 시설은 2009년 4월 부터 건설을 시작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특수한 원자재와 부속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원활하게 가동되는 원심분리실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주장은 신뢰할 수가 없다. 북한이 이러한 물자들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었는가는 국제적인 핵 비확산 체제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북한이 자체적으로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이나 강철합금, 고리자석, 베어링, 진공밸브 등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능력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이러한 설비들이 오래 전 부터 다른 장소에서 건설되어 가동에 들어갔으며 새로운 시설로 옮겨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는 것이다. 원심분리기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품목들은 파키스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조달 체계를 통해서 조달된 것으로 생각된다. 파키스탄의 전직 대통령 무샤라프(Pervez Musharraf)는 그의 회고에서  파키스탄 과학자 칸(A. Q. Khan)이 2000년 즈음에 원심분리기 24대 분에 해당하는 농축 시작용 부품(enrichment starter kit)을 조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칸이 2004년 체포되기 전에도 북한 과학자들이 칸의 연구소와 밀접하게 협력했으며 칸의 연구소는 원심분리설비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실시했다. 또 2001년 말에는 CIA가 의회 보고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 계획을 위해서 러시아와 독일로 부터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물자들을 획득하려 한다는 정보를 밝혔다. 그리고 최소한 몇몇 부품은 북한이 독자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북한과 이란이 미사일 기술에 대해 밀접한 교류를 시작한 이래로 두 국가의 협력을 통제할 수 없었다. 북한의 원심분리 시설은 이란이 국제 사찰단에 공개한 것 보다 훨씬 정교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란이 차세대 원심분리시설을 건설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북한은 우라늄 처리와 원자로 기술에 있어 이란 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것을 이란에 제공하는 것도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우라늄 원심분리 계획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설에 대한 사소한 흔적과 징후들은 평가를 골치 아프게 한다. 북한이 현재 어느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징표는 북한이 다른 나라, 이 경우에는 파키스탄으로 부터 물자를 조달하려는 활동과 기술협력을 살펴보는 것이다. 2002년, CIA는 이러한 징후들을 가지고 북한이 2000년대 중반 부터는 연간 두 개의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린바 있다. 2002년 10월,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 증거를 가지고 북한과 대립했고 이로써 비핵화를 조건으로 궁극적인 관계 정상화로 나가려 했던 1994년의 합의 체제는 끝을 보게 되었다. 합의가 파탄나자 북한은 이를 구실로 핵비확산조약을 탈퇴하고 폐연료봉으로 폭탄을 생산하기 위한 플루토늄을 재처리해 첫 번째 핵폭탄을 만들었다.

이 때를 되돌아 보면 2002년 10월의 대립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 원인은 정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합의 체제를 무너뜨린 부시 행정부의 잘못된 정치적 결단에 있다. 영변에서 북한측은 우리에게 나중에는 보다 큰 원자로를 만들 것이며 원자로 기술과 연료 문제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성공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우리를 안내한 북한 외무성 관리는 북한이 과거 경수로를 만들고 자체적인 농축시설을 만들겠다고 위협했지만 “헤커 박사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우리를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북한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미국의 행동이 그들을 이 길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북한에 경수로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1985년 소련과 두 개의 경수로를 제공받는 협정을 체결한 이래로 진지하게 경수로를 추진했다. 합의체제는 핵무기 제조에 유리하지만 원자력 발전에는 불리한 흑연감속로를 대체하려는 것 이었다. 반면 경수로는 폭탄 제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전력 생산에는 매우 좋다. 2009년 4월 5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고 예상대로 UN의 규탄이 나오자 북한 정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우리는 주체적인 원료와 기술에 기반해 100퍼센트 작동하는 경수로를 개발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제 북한은 호언했던대로 25~3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소형의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나는 북한이 진짜로 원자력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경수로가 폭탄 제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는데도 쓰일 수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경수로에서 만들어낸 플루토늄은 기존의 흑연감속로에서 생산한 플루토늄 처럼 폭탄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사실 북한이 플루토늄 폭탄에 필요한 연료를 더 필요로 한다면 경수로를 만드는 대신 기존의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면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원자로의 건설은 몇 가지의 정책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경수로는 농축 우라늄을 필요로 하는데 만약 원자로 연료로 사용할 농축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북한은 이것을 쉽게 고농축우라늄 폭탄의 원료로 전환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이란의 핵 계획에 대해 우려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 시설들을 공개하면서 미국의 정책 입안가들에게 진지하게 고려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경우 시설 공개는 핵 계획이 외교 정세에서 북한에 유리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미국의 대선 일정에 맞춰 사전에 조율된 계획의 일부일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국제 사회가 2009년 4월의 로켓 발사를 비난한 뒤 공식적으로 6자 회담에서 탈퇴하고 국내 정치용으로, 그리고 국제 사회에 북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핵 기폭장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게 위해 2차 핵실험을 실행했다.

동시에 북한은 소형 경수로를 설계하고 영변의 연료봉생산시설의 일부를 전환하고 원심분리기를 설치하여 농축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우리의 방문 일정을 그들이 계획을 완료한 시점에 맞추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오랫동안 품어왔던 전력 생산용 경수로에 대한 야심에 한발짝 다가서면서 우라늄 농축 계획의 필요성을 정당화 하려 했다.

진실은 북한이 처음 부터 핵무기와 전력 생산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플루토늄과 우라늄 계획을 함께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핵무기와 전력 생산 때문에 플루토늄 계획을 선호했었으나 동시에 1994년 합의 체제의 일환으로 미국이 전력 생산을 위한 경수로를 제공한다면 플루토늄 폭탄 계획은 맞바꿀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북한은 칸 박사와 접촉하고 합의 체제가 매우 느리게 이행되면서 1990년대 후반 폭탄 생산을 위해 우라늄 계획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무렵에는 많은 정보 보고서가 보여주었 듯 북한은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을 본격적으로 조달하고 있었다. 2002년 10월의 외교적 대립은 북한이 2003년 플루토늄 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만들었고 그 뒤의 핵실험을 통해 폭탄 개발에 성공했음을 보여주려 했다.

북한이 이번에 우리게에 보여준 현대화된 원심분리시설은 북한이 결코 폭탄 생산을 위한 우라늄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북한은 충분한 원자재와 부품을 획득하였고 이것들을 가공하고 조립해서 작동되는 원심분리기를 만들었고 그 다음에는 은폐된 시설에 설치해 가동에 들어간 뒤 다시 영변으로 그것들을 재빨리 옮겨서 설치했다. 우리가 목격한 원심 분리 시설은 핵폭탄이 아니라 원자로의 연료를 생산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핵무기 생산시설을) 과거 한 차례 사찰을 받았던 장소에 설치해 놓고 외국인들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위한 시설도 현재 북한의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이것이 동북아시아의 안보문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이다. 우리가 추정하기로는 북한은 이미 네개에서 여덟개의 초보적인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양의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한다고 해도 북한의 위협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고농축 우라늄으로 폭탄을 만드는 것은 더 쉽지만 보다 복잡하고 소형의 폭탄을 만드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북한이 현재의 폭탄 보유량을 유지하거나 폭탄을 조금 더 생산할 생각이라면 지금 가지고 있는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재가동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핵무기 보유량을 본격적으로 늘릴 생각이라면 현재의 농축시설의 생산능력을 확대하거나 별도의 비밀 시설을 건설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당장 원심분리기를 늘릴 수는 없을 것이다. 원심분리기를 늘리는 것은 중요한 재료와 부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의 광범위한 불법 조달 경로를 봉쇄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늘리는 것 보다 더 골치아픈 것은 북한이 핵물질이나 핵물질 생산 시설, 특히 원심분리기 기술과 같은 것을 수출할 가능성이다. 게다가 북한은 경수로와 농축 시설을 공개함으로써 사실상 비핵화의 개념을 재정립했고 외교적 방식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가까운 시일 내에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을뿐만 아니라 경수로 계획과 원심분리시설도 계속해서 추진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플루토늄 계획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거의 성공할 수 있었지만 우라늄 계획은 그와 같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라늄 계획은 플로토늄 만큼이나 골치 아프지만 플루토늄 계획 보다 훨씬 그럴싸하게 평화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우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외무성의 관료는 북한이 2005년 6자 회담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계속해서 지지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시발점으로 미국이 2000년 10월의 북미 공동 성명을 재확인 해 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장기간의 외교적 과정의 최고점이었던 이 문서는 양국 정부가 상대국에 대해 적대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과거의 적대 관계에서 자유로운 새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함께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확인하는 것 이었다.

이제 미국은 동북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핵 문제에 국한시키지 말고 전반적으로 재검토 해야 할 시점에 왔다. 근본적이고 항속적인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미국 정부는 내가 “세가지 No”에 대한 답으로 하나의 Yes 라고 부른 것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 (세 가지 No는) 더 이상의 핵폭탄 생산을 하지 않을 것, 핵폭탄의 개량을 하지 않을 것, 그리고 핵 물질의 수출을 하지 않을 것이다.(no more bombs, no better bombs, and no exports) (한 가지 Yes는) 미국이 북한의 근본적인 안보적 불안을 공동 성명의 취지 내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다. 우리가 외무성의 안내인에게 북한이 세가지 No와 하나의 Yes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명확하게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우리도 이에 대답할 것 입니다.”

북한이 원심분리시설을 공개한 것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그 어느 때 보다도 어려우면서 시급하게 하고 있다.

엉성한 날림 번역 이긴 합니다만 전반적인 요지를 전달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듯 싶습니다;;;;

일단 저는 북한이 핵 무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헤커 박사의 제안에 대해서는 약간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특히 제 마음에 가장 걸리는 헤커 박사의 제안 입니다. 더 이상의 핵폭탄 생산을 하지 않을 것, 핵폭탄의 개량을 하지 않을 것, 그리고 핵 물질의 수출을 하지 않을 것(no more bombs, no better bombs, and no exports)은 전체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긴 합니다만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지 의문입니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 핵확산 방지를 위해 북한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핵 무기를 묵인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앞이 깜깜합니다.

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글

며칠전 포린 어페어즈 웹사이트에 북한의 우라늄 시설을 방문한 시그프리드 헤커(Siegfried S. Hecker) 박사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조금전 RSS피드를 확인하다가 읽었는데 꽤 흥미로운 글이니 다른 분들도 한번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제가 지금 조금 바빠서 전문을 번역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입니다.

특히 제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건설시기에 대한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북한이 2009년 부터 시설을 건설한 것이 맞으며 이명박 정부의 '강경책(?)'에 책임이 있다는 근거로 사용해왔습니다. 하지만 헤커 박사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2009년 4월 부터 건설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That is not credible)'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야권과 야권 편향적 언론들은 2009년 부터 건설을 시작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이 글은 한번 일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헤커 박사는 자신이 시찰한 시설의 설비들이 이미 훨씬 오래전에 만들어져 최근에 옮겨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대략 한번 훑어봤는데 골치아픈 이야기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김삼웅의 리영희 평전

어제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김삼웅이 쓴 리영희 평전을 봤습니다. 저자를 보고 책의 내용을 대략 짐작할 수 있겠더군요. 한번 읽어 봤는데 역시나였습니다.

김삼웅은 근현대사와 관련해서 많은 인물 평전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은 많지만 좋은 책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김삼웅의 글 쓰기는 지나치게 단조롭습니다. 일단 인물에 따른 호불호가 너무 명확한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특정한 인물에 대해서는 한없는 애정이 묻어납니다. 한마디로 분량만 많을 뿐 그 수준은 초등학생들에게 읽히는 어린이 위인전에 불과합니다.

리영희 평전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김삼웅은 리영희에 대해 한없는 애정과 존경을 담아 글을 써나가고 있습니다. 70~80년대 지식인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리영희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빼고 나면 뭐가 남는지 의문입니다. 조금 더 객관적인 평전이 되려면 다루고 있는 인물의 한계나 문제점에 대해서도 냉철한 비판이 있어야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요소가 없습니다.

리영희 교수를 존경하는 분이라면 괜찮겠지만 그 외의 분들에게는 별로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닙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리영희 교수에 대한 존경을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굉장히 불쾌했습니다. 이보다는 리영희 교수의 대담식 자서전인 『대화』를 읽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입니다.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전시동원체제와 군수기업체의 순익문제

항공산업 초창기 부터 냉전 초기까지 미국의 군사항공산업을 다룬 비들(Wayne Biddle)의 Barons of the Sky를 읽던 중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전시 동원체제가 본궤도에 올라가면서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항공기 생산기업들의 수익률이 떨어졌다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항공기 생산회사들이 적자를 본 것은 아니지만 수익률이 급속히 하락했다는 것은 꽤 의외더군요. 미의회에서는 기업의 순익이 생산가격의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1940년에는 6%였다가 1942년에는 5%, 그리고 1943년에는 4%까지 떨어졌습니다. 전시동원체제가 완성되어 갈수록 기업들은 재미를 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죠;;;;

이 책에서는 그 사례로 록히드의 P-38 가격을 들고 있습니다. 1942년 6월 육군항공대가 1,800대의 P-38을 주문했을 때 한대당 가격은 82,418달러로 록히드는 한대당 3,925달러의 순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하원에서 록히드가 폭리를 취한다는 보고서를 발행하자 상황이 꽤 안좋아졌습니다. 1943년 1월에 주문된 800대의 P-38은  한대당 가격이 66,861 달러로 떨어졌는데 한대당 순익은 2,572달러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1944년 6월에 주문된 1,700대는 대당 가격이 67,589달러로 조금 올라갔지만 순익은 2,000달러로 더 떨어졌다고 하는군요;;;; 당시 록히드의 사장이었던 그로스(Robert E. Gross)는 꽤 실망했는지 1945년 1월 한 주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남은 전쟁 기간 동안은 1942년 만큼 돈을 벌 수 없을 거라고 푸념했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군수 생산이 폭증하면 기업의 이익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인데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것이죠. 생각해 보면 전시동원체제에서는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데 ‘갑’에 해당하는 정부가 ‘을’에 해당되는 기업의 이익을 꼬박꼬박 챙겨주는게 더 이상하긴 합니다.

2010년 12월 5일 일요일

중일전쟁 직전 국민당 중앙군 직계 보병사단의 편제

제가 이것 저것 늘어놓고 질질끄는 성향이 있다 보니 공수표만 남발하고 아직 못쓴 글이 꽤 많습니다;;;; 그 중에 독일 군사고문단이 훈련시킨 국민당군의 독일식 사단에 대한 글이 하나 있는데 기분 내킬 때 몇 줄씩 쓰는 제 성향상 언제 다 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중일전쟁 직전 국민당 중앙군의 사단 편제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를 해 봤는데 오늘은 이거나 올려볼까 합니다.

※이 글의 내용은 모두 曹剑浪, 国民党军简史 上册(解放军出版社, 2009) 457쪽~496쪽을 정리한 것 입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국민당군과 여기에 속한 군벌군대는 전형적인 4각 편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점은 일본군도 마찬가지인데 유럽의 군대가 1차대전을 거치면서 3각 편제로 전환한 것과 비교하면 편제의 개편이 지독하게 늦었다고 할 수 있지요. 중일전쟁 발발당시 국민당군은 4각 편제사단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3각 편제로 편성된 사단도 상당수 존재하는 상태였습니다.


1. 4각 편제로 구성된 국민당 중앙군 직계사단
사실 국민당군의 4각 편제는 제대로 된 4각 편제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기본적인 편제는 각각 2개 보병연대로 편성된 2개 보병여단 이었지만 사단 직할대의 규모가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냥 편제상의 편성만 보더라도 포병은 불과 대대급에 불과했으니 말입니다. 1차대전 초기 일반적인 4각 편제 보병사단은 2개 포병연대로 구성된 1개 포병여단을 가지고 있었으니 중국군의 포병전력이 얼마나 약했는지는 편제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1930년대 국민당군의 4각 편제 보병사단의 편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사단사령부
-참모처(參謀處)
-부관처(副官處)
-군계처(軍械處)
-군수처(軍需處)
-군법처(軍法處)

보병여단(2개)
-보병연대(3개 보병대대)
 >보병대대(3개 보병중대)
   =보병중대(3개 보병소대)
     -보병소대(3개 분대(班))
   =기관총중대(機槍連, 기관총 6정)
 >박격포중대(박격포 6문)
 >통신소대(通信排, 2개 분대)
 >수송소대(輸送排)
 >후송소대(擔架排, 3개 분대)

기병중대(4개 소대)
-기병소대(2개 분대)

포병대대(砲兵營, 3개 중대)
-포병중대(3개 소대)
 >포병소대(2개 분대)
-통신소대
-수송소대(3개 분대)
-탄약대(彈藥隊, 3개 분대)

공병대대(3개 중대)
-공병중대(3개 소대)
 >공병소대(3개 분대)
-수송소대(3개 분대)

특무대대(보병대대와 편성 동일)

병원(300 침상 규모)

통신대

정비대(修械所)
(中国军事史 编写组, 中国历代军事制度(解放军出版社, 2006), p.627 )

하지만 편제란 어디까지나 편제라서 중일전쟁 발발당시 국민당 중앙군 직계 사단 중에서 실제로 포병대대를 제대로 갖춘 사단은 15개 사단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사단은 포병중대 1개만 가졌거나 아예 포병이 편제에 없었지요;;;; 편제대로 1개 포병대대를 가져봐야 산포 16문 정도에 불과하니 완전 편제된 일본군 보병사단에게 상대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중일전쟁 당시 국민당군에서 정예로 꼽혔던 독일식 사단도 산포 1개 대대만 달고 있었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일전쟁 발발 당시 국민당군 보병사단의 편제상 공용화기 및 중화기 보유량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경기관총 : 274정
중기관총 : 54정
경박격포(擲彈筒) : 243문
박격포 : 30문
산포/야포 : 16문

국민당군 직계사단 중 중일전쟁 발발당시 4각 편제로 편성되어 있던 사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 1, 공병대대 1, 보급대대(輜重營) 1, 기병중대 1, 특무중대1
3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대대1, 통신대대1, 특무중대1, 보급중대1, 의무대(衛生隊)1
4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대대1, 통신대대1, 기병중대1, 특무중대1, 보급중대1, 위생대1
6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대대 1, 포병중대1, 기병중대1, 특무중대1, 보급중대1, 통신중대1, 위생대1
9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대대1, 통신대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의무대1
10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대대2, 통신대대1, 기병중대1, 특무중대1, 보급중대1, 위생대1
11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중대1, 통신중대1, 특무중대1, 보급중대1, 위생대1
14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중대1, 특무중대1, 보급중대1, 통신중대1
25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대대1, 통신대대1, 기병중대1, 특무중대1, 보급중대1
36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대대1, 통신대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42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대대1, 기병중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44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보충연대 1, 포병대대1
45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특무대대1, 보급중대1, 통신중대1
47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대대1, 기병중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54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대대1, 기병중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군병원 1
55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대대1, 특무중대1
57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특무중대1
58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통신대대1, 공병중대1
67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중대1, 통신중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의무대1
78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대대1, 보급대대1, 기병주대1, 특무중대1
80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대대1, 통신대대1, 포병중대1, 기병중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83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대대1, 통신대대1, 기병중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87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공병대대1, 통신대대1, 기병중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88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대대1, 통신대대1, 기병중대1, 특무중대1
89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대대1, 통신대대1, 기병중대1, 대전차포중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의무중대1, 군병원1
95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중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특무중대1
98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공병대대1, 보급대대1, 통신중대1, 특무중대1
99사 : 2개 여단 4개 보병연대, 특무대대1, 보급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2. 3각 편제로 구성된 국민당 중앙군 직계사단
한편, 국민당 중앙군 직계사단 중에도 3개 보병연대로 구성된 3각 편제사단이 상당수 존재했습니다.

5사 : 3개 보병연대, 보급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의무대1
43사 : 3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보급대대1, 특무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49사 : 3개 보병연대, 보급대대1, 특무대대1, 포병중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51사 : 3개 보병연대, 통신중대1, 특무중대1, 위생대1
59사 : 3개 보병연대, 보급대대1, 특무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60사 : 3개 보병연대, 특무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보급대2, 의무대1, 전신반1
61사 : 3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보급대대1, 특무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92사 : 3개 보병연대, 특무대대1, 보급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의무대1
93사 : 3개 보병연대, 특무대대1, 보급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96사 : 3개 보병연대, 보급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97사 : 3개 보병연대, 포병대대1, 특무대대1, 보급대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3. 특이한 편제를 가진 보병사단
특이한 편제를 갖춘 사단도 있었습니다. 국민당 중앙군 직계사단인 2보병사단은 무려 6개 보병연대에 보충연대도 하나 가진 특이한 사단이었습니다. 물론 포병은 달랑 1개 대대로 머릿수만 많은 사단이었지만 말입니다;;;

2사 : 3개 여단 6개 보병연대, 보충연대1, 기병연대1, 포병대대 1, 공병대대1, 통신대대1, 기병중대1, 보급중대1, 특무중대1, 의무대1

94사의 경우는 3각 편제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별도로 2개 보병대대가 더 추가된 편제입니다.

94사 : 3개 보병연대 2개 보병대대, 특무대대1, 포병중대1, 공병중대1, 통신중대1, 보급중대1


이 글에서는 국민당 중앙군 직계사단만 이야기 했는데 사실 국민당 중앙군의 직계가 아닌 사단이나 군벌 사단도 이것 보다 나을 건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군벌군대까지 정리를 하면 한번 표로 정리해서 다시 올려보겠습니다.

잡담하나. 이 글을 쓸 때 참고한 曹剑浪의 国民党军简史는 원래 두권 짜리였는데 2009년에 개정판이 나오면서 세권으로 늘어났습니다. 처음 개정판을 샀을 때는 구판과 크게 다른 것이 없어 보여 김이 샜는데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니 꽤 괜찮은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상권의 앞부분에서 국민당군의 복잡한 계통을 보기 쉽게 표로 정리해 놓았는데 이게 정말 좋더군요. 구판에서는 그냥 간단히 중앙군과 군벌군대에 대한 설명만 있어서 좀 아쉬웠지요.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Falling - Julee Cruise

오전에 원고 하나를 수정해서 보내고 쉬는 중입니다.

맥주를 한 병 마시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가끔씩 겨울비가 내리니 술맛이 제법 도는군요.

미드 트윈픽스에 쓰인 줄리 크루즈(Julee Cruise)의 Falling을 반복해서 듣는 중입니다. 이 노래는 술집에서 정신이 살짝 몽롱한 상태일 때 들으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맨정신으로 듣는 것도 나쁘지 않군요. 


Julee Cruise - Falling (Twin Peaks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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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에 약간 몽환적인 음악이 함께 하니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갑니다.